가톨릭교회는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해야 하며 이 영성체는 원칙적으로 부활시기에 이행되어야 한다”(교회법 제920조, 제989조)고 가르치고 있다. 교회법상으로는 일 년에 한 번만 받아도 되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두 번의 고해성사 즉 판공성사를 하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규정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12년 한국 천주교회」에 따르면 고해성사의 경우 전년 대비 4.6%가 감소했다. 또한 지난 2월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30주년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특별강좌에 나선 조광 교수는 “2010년 기준 판공성사 참여자 비율이 34%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앙선조들에게는 선물이었던 판공성사가 21세기 신앙인들에게는 의미를 잃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현대 신앙인들에게 ‘판공성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 상설고해소를 찾아갔다.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인 3월 19일 찾은 명동성당 상설고해소에는 판공성사를 보려는 신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성사가 시작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묵주기도를 하거나 「매일미사」를 보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사제를 기다리며 오랜 세월 동안 성찰했던 신앙선조들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고해성사의 방법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 영성을 고스란히 따르려는 신자들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명옥(안나·53·서울 목5동본당)씨는 “3년 전에 신부님께서 고해소에서 해주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고, 삶의 지표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며 “그때 당시에는 그 말씀을 담을 수 없었지만 계속 곱씹다보니 신부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 고해성사를 정의한 심씨는 “평소에는 판공성사도 고해성사의 일환으로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내적으로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30주년과 오는 8월로 예정된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 등 한국교회에 경사가 겹친 올해 ‘판공성사’의 의미를 되새긴 신자도 있었다. 임인수(스테파노·56·서울 명동본당)씨는 “신앙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판공성사의 전통도 이어질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박해시대에 비해 훨씬 환경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신앙과 판공성사(고해성사)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미란(제노베파·54·서울 서초동본당)씨는 “그분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신앙의 자유가 허락된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며 “늘 명동성당에 와서 고해성사를 하는 이유도 그분들의 순교와 희생을 기억하고 제 모습을 반성하고 쇄신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부활대축일이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판공성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판공성사(고해성사)는 성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성사다. 우리 신앙 선조들이 모진 박해 속에서도 애타게 판공성사를 기다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앙선조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성사를 준비한다는 명동성당 상설고해소 방문 신자들의 모습을 통해 잊었던 판공성사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