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들 스스로 창립하고 순교로 증거한 한국교회의 역사는 단독적이 아니라, 서양에서 들어온 서학(西學)을 능동적으로 연구하고 수용함으로서 이뤄진 것이다.
서학은 일반적으로 17~19세기에 선교를 목적으로 동양에 온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진 서양학문을 말하며 일본에서 선교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통해 전해지기 시작했으나, 대체로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저술한 종교와 과학기술을 일컫는다. 이 서적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 전후, 중국 파견 후 돌아오는 사신들을 통해 서서히 전래돼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서학의 조선 전래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종군했던 스페인 출신 예수회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 신부 시기로부터 시작되며, 병자호란 때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독일인 아담 샬 신부를 접촉하게 된 이후 천주교가 알려졌고, 1660년 중국 남경 대목구 설정과 함께 조선이 관할로 포함된 것이 한국교회 시작의 계기라 할 수 있다. 이후 권철신이 주도하던 강학에 이벽이 참여하면서 천주교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했다. 또한 아버지의 북경 사신 파견 길에 함께 한 이승훈은 이벽의 당부로 북경에서 영세하고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가지고 돌아와, 이벽과 권일신에게 세례를 줬고, 천주교 서적들을 전했다. 이벽은 그 서적들을 더 깊이 연구한 후 명례방 공동체를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천주교 서적들은 신앙 공동체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조선에 파견된 주문모 신부는 1795년 비밀리에 입국하며 천주교 서적을 가져왔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선교와 교육을 위해 정약종의 「주교요지」 간행을 인준하기도 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1년 조선교구를 설립, 브뤼기에르 주교를 교구장으로 임명해 조선에 파견했으나, 입국 전 병사했고, 이후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박해 중에도 사목과 선교에 필요한 천주교 서적들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의 학자들은 서학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통해 유교의 주자학 위주에서 정신적으로 더 넓은 세계와 문화에 대해 눈을 뜨게 됐고, 천주교의 존재를 알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학은 조선의 유교 문화와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고, 상호 비판과 논쟁은 물론, 거센 반대를 받는 과정을 통해 점차 뿌리를 내렸다.
신앙 선조들은 이같은 극심한 탄압에도 한역서학서들을 읽고 연구하며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를 시작했으며 순교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확신을 저작으로 남겼다. 신앙의 맥이 흐르는 한국 신학에서 순교영성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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