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인간’ 내용
지난주에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의 반포 배경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개요 및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번 주에는 이 회칙의 전체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려한다. ‘노동하는 인간’은 서론을 포함하여 크게 5부로, 이는 다시 세분되어 주제별로 모두 27개의 소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1~3항)은 이 회칙이 나오게 된 동기와 함께 레오 13세부터 역대 교황들의 사회교리가 어떻게 변천, 발전되어왔는가를 설명한다. 특히 복잡한 사회 현실 안에서 계속해서 발생하고 날로 복잡해지는 사회문제 해결의 필수적 실마리로 인간 노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따라서 인간의 노동은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열쇠’, ‘본질적인 핵심’이 된다는 대명제를 제시한다.
제2부(4~10항)에서는 ‘노동하는 인간’의 노동관이 제시된다. 여기서는 창세기에서의 노동 개념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독특한 설명과 함께 인간 노동이 지니는 객관적 의미와 주관적 의미가 구분되어 설명된다.
즉 노동의 객관적 의미란 노동에 의해 생산된 사물들 - 농산물과 공산물에서부터 노동의 도구, 과학기술, 더 나아가서 인류가 살고 있는 사회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 도구들의 총체 - 과 관련을 맺으며, 주관적 의미는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아실현과 관련된다. 따라서 노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노동의 주관적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한 개인으로서 계획적이고도 이성적인 방법으로 활동하는 주체로서의 노동하는 인간이며, 이러한 인간의 노동 활동은 노동의 객관적인 내용과는 무관하게 인간성을 고양하는 데 이바지해야 하고, 바로 그 인간성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간이 되라는 소명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위에서 언급된 창세기 해석을 더욱 발전시킨다. 만일 하느님께서 인간에 위임한 것이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공동 창조주’로서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라면, 인간 노동의 윤리적 평가의 기준들은 물질적 결과나 노동 그 자체의 내용보다는 노동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서의 인간 존엄성 안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곧 인간 노동의 내용이나 결과와는 무관하게 인간의 노동을 통한 활동은 “인간의 인간성을 구현하고, 바로 그 인간성 때문에 인간에게만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소명을 완수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6항)는 것이다. 교황이 언급하는 것처럼, 인간이 만일 “천부적인 이성적인 방법으로 행동할 수 있고 또 자신에 대해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6항)라면 인간의 노동은 노동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자신을 자기완성의 길로 이끄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제3부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현대 사회에서 극렬하게 나타나고 있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긴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러한 긴장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 극복에 대한 윤리적 지침을 제공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산업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중대한 오류는 자본을 노동보다 우선적인 위치에 두면서 노동과 대립되는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자본과 노동 사이의 투쟁이란 “소수이지만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기업주나 생산 수단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과,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해 단지 노동으로만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투쟁을 말한다”(11항).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기업주(사용자)의 자의에 맡겨야만 했고, 기업주들은 최대 이윤 추구의 원리에 따라 고용인들의 노동에 대해 가능한 적은 임금을 책정하려고 하는 데에서 이러한 긴장과 투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기업주들의 이러한 행위를 착취로 여기게 되며, 이러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동자들은 반대 운동을 조직하게 되면서, 역사 안에 소위 계급투쟁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갈등과 투쟁에 대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라는 기본 원리를 강조하면서 그러한 갈등이 반드시 극복되어야할 과제임을 역설한다. 생산에 있어서 주요동인(主要動因)은 노동이며, 생산 수단으로서의 자본은 단순히 도구적인 원인이 될 뿐이다. 따라서 자본이 노동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하는 인간’은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즉 노동과 자본 사이의 본질적인 대립은 없다는 전통적인 주제를 발전시킨다. 사실 노동과 노동의 도구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기에 투쟁보다는 화해가 절실히 요구되며, 이에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 계급과 자본가를 화해시킬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즉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 또는 이윤에 참여하거나 소위 노동에 의한 주권 소유 등 ‘노동 수단의 공동 소유’와도 같은 제도가 제안된다(14항). 교황은 특히 노동자들의 삶에서 인간의 노동이 단순히 경제적 목적에만 종속되는 근본적 오류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과,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 노동에 관련된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면서 그 전제 조건으로 노동의 인격적인 가치를 부여해 주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원리’를 강조한다(15항).
제4부는 인권의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다룬다. 노동은 인간의 편에서 볼 때 하나의 책임이며 동시에 의무이기 때문에 노동과 관련하여 각자는 이러한 의무에 상응하는 도덕적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교황은 공산주의 사회를 겨냥하면서 직접 고용주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주와의 계약에 있어서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 재능에 가장 적합한 분야에서의 노동에 종사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노동자들이 원한다면 직업을 바꿀 수 있는 권리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황은 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해서는 간접 고용주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노동 규약을 만들고, 산업 개발을 증진시키며, 노동자들을 위한 훈련 및 재훈련의 기회가 주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주택을 건설하고 유용한 교통 시설을 갖추는 일 등이 바로 간접 고용주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노동자들의 객관적 권리로서의 ‘노동의 권리’,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 ‘사회보장 등의 사회적 혜택을 받을 권리’,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파업의 권리’를 다룬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한 여성의 노동(19항)과 농업 노동자(21항) 그리고 장애자들의 노동(22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모두 인간으로서의 노동자 권리의 측면에서 예외가 없으며, 따라서 노동의 세계에서 흔히 소외되기 쉬운 이들의 문제를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 장에서는 노동의 영성(24~47항)이 다루어진다.
노동의 영성에 있어서의 핵심은 인간의 노동이 창조주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노동은 땀을 흘리기 위해, 그리고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며, 이렇게 땀을 흘리는 노고는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이 땅에 사셨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축복으로 변화되며, 따라서 수고로서의 노동은 이제 구원되었고, 이미 구원된 세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곧 인간은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활동에 참여하며,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제공해 주며, 노동하는 인간의 참된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이동익 신부는 1983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수품 됐으며, 로마 라테란대학교 성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 공항동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교황청 생명학술원 회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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