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마을마다 당산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맡아주는 수호목으로서 외경(畏敬)의 대상이었다. 좋은 일 궂은 일 모두 그 나무아래 모여서 의논·실행되어 마을공동체가 유지되어왔고, 해마다 응당의 예로 섬긴 민속신앙 대상이 있었다. 그 신목의 그늘로 해서 인근 논밭의 곡식이 잘 자라지도 익지도 않았지만, 그 나무아래 전답이 있다는 사실은 자랑이 되긴 했어도 불평이 되진 않았으니, 당산나무(堂神木)가 그 논밭주인의 모든 것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김남조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읽으면서 왜 어릴 적의 마을 수호신 당산나무가 떠올랐을까? 우리 한국 시단의 거목 김 선생님이 평생 성취해 오신 시적 위상다움이 전해져서, 가슴이 먹먹해졌기 때문일까? 역시 대 시인은 이렇구나. 뭐 이런 류의 울림이 그대로 느껴진 탓일까?
기교를 넘어선 무기교의 경지, 새로움을 넘어서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경지에서 살과 물기까지 다 버린 골격과 뼈대가 최대 최고의 진실이고 감동으로 전해졌다. 한국 시단은 좋건 싫건, 순·역의 영향이었건 간에, 이 대시인에게 빚진바 없진 않을 거라는 가정과 인정이 실감났던 독후감이라면, 내가 잘못 읽었거나, 여성(女性)이자 모성(母性)이고, 나이 들고 아프고 있다는 모종(某種)의 편견들 탓이었을까?
시인 김남조라는 나무와 그림자가 한국 시단과 그분의 그림자의 관계일까? 아니 뒤바뀜일까? 후대 비평가들의 짐이겠지만, 아무튼 시집 한 권을 읽는 동안은 눈감았다 다시 읽는 내내 시골마을마다의 당산나무가 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너무 오래 우리민속에 심취했던 탓일까. 무슨 말로 구차히 독후 소감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심사자의 무식무지의 노출만 같다.
심장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의 가장 중요한 최초 최후의 기관이다. 심장통증은 목숨과의 직결로 안다. 나이 들면서 심장이 멎은 위험을 경험했고, 온갖 병에 직·간접적인 노출로도 알아졌다. 그 심장을 제목으로 한 시단경력 60년의 시집이다. 세수 88 미수(米壽)에 이른 선생님의 영·육간의 강건도 바라면서, 뽑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쓸 수가 없는 절대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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