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부르짖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정말로 아들 예수님을 버리셨을까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께서 어떻게 당신 아드님을 이렇게 절망적으로, 비참하게 죽게 내버려두실 수 있을까요? 멀리서 지켜보시기는 하셨을까요? 이런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희망과 기쁨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외면, 배척, 조롱, 멸시당하며 죽어갈 때, 하느님께서는 어디 계셨습니까?
지나간 일에 대해 우리는 가끔 가정을 해봅니다.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예수님의 수난기를 듣고, 여러 가정을 해보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살려서 오래오래 우리와 함께 있고 싶고,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 가정을 해보려 합니다.
가장 첫 번째는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은 돈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 넘기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예수님의 수난은 시작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십자가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최후 만찬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다가 하려는 일을 알아차렸다면, 그래서 유다를 막았다면. 예수님이 겟세마니에서 하느님께 당신이 받을 이 잔을 비켜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면.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이 했다면, 예수님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으셨을까요? 겟세마니 동산에 유다가 데리고 온 백성의 무리들이 마음을 돌려 예수님을 붙잡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도망치지 않고 예수님 곁을 지켰다면, 무리들과 맞서 싸우고, 예수님을 끝까지 지켰다면. 카야파 대사제 집에서 예수님께서 끝까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면, 당신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수석 사제들 중에 누구 한 명이라도 강력히 예수님을 도와주었더라면. 빌라도가 자기 아내의 말을 들었다면. 군중이 바라빠 대신 예수님을 원했다면. 정말 많은 가정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 중에 어디 한 군데에서만 예수님을 도왔다면,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지 않으셨습니다. 비켜갈 수 있는 수많은 경우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정확히 짚어 가셨습니다. 한 곳만이라도 비켰으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이 가정을 현실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처럼 배척당할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매맞고 모욕당하고 죽는 것이 무서웠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군중의 동요를 두려워하듯, 제자들이 잡혀갈 것 같아 도망치듯, 은 돈 서른 닢이 좋아서,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에도 믿고 싶지 않은 제자들이 유다를 의심하지 않듯, 그렇게 사람들은, 우리는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가정했던 일들을 보면, 다 우리가 마음을 고쳐 먹으면 되는 일들이었습니다. 유다, 제자들, 사제들, 빌라도, 군중 다 우리들 몫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시작하고 진행시키고 십자가에 못박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결정하고 실행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 손에 당신 아드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믿어주셨습니다. 탄생, 성장, 죽음, 예수님의 삶, 예수님을, 하느님 당신 손에서 우리들 손에 맡기셨습니다.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맡기는 이 신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사랑과 자비, 빛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만이 나올 수 있는 전적인 신뢰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 예수님을 버리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이 수난 받을 때 옆에 없으셨습니까?’ 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나는 예수님의 수난에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버렸습니까?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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