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제가 제대 위에 섰다. 매일같이 오르는 제대지만 이번만큼은 이유가 달랐다. 음악으로 ‘주님의 수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대교구 김택훈(돈암동본당 보좌)·양재모(등촌1동본당 보좌) 신부가 지난 4일 서울 혜화동성당(주임 이재룡 신부) 사순음악회이자 아퀴나스 합창단(단장 최경일, 담당 최호영 신부) 제73회 정기연주회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2012년 아퀴나스 합창단이 초연한 ‘요한에 의한 주님의 수난기’(이하 요한 수난곡) 한글판에 예수와 빌라도 역으로 참여했던 두 사제가 2년 만에 다시 똑같은 역으로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시 부제였던 그들이 지난해 수품을 받고 현재 돈암동과 등촌1동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펼치는 젊은 사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쁜 사제 생활 중에도 두 사제가 어렵사리 무대에 오를 결심을 한 데는 “사제가 되면 다시 한 번 같이 오라토리오를 해보자”고 했던 지휘자 한상우(마리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교수의 제안이 있었다. 합창단 연습에 매번 참여할 수 없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연습했다는 두 사제는 2년 전 자양2동성당과 신학교에서 공연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거기에 깊이가 더해졌다.
예수역을 맡은 김택훈 신부는 “부제 때는 음악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주님 수난의 신비에 깊이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라며 “동기인 양재모 신부 역시 빌라도의 입장에서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두 사제는 전문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 신학생 시절 접한 교회음악 수업과 부제 때 받은 성악 지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요한 수난곡’이라는 어려운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가지고 있던 음악에 대한 애정과 탁월한 목소리 덕분이었다. 또 하나, 작품에 담긴 작곡가 바흐와 시인 브로케스의 신앙심이 두 사제가 각자의 역할에 젖어들 수 있도록 도왔다.
빌라도역을 맡은 양재모 신부는 “바흐와 시인 브로케스가 묵상한 내용을 연습하면서 2시간 이상 들여다보면 단순히 음악가로서의 재능뿐 아니라 주님 안에 깊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가사들이 주님 수난의 길을 잘 들여다보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깊이 묵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며 준비했던 이번 공연이 끝난 후 두 사제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의 수난기에 동참했던 두 사제에게는 음악회에 함께했던 모든 이들에게도 인간을 위해 희생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여정이 잘 전달됐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남아있었다.
“많은 신자 분들이 음악회에 왔다는 생각이 아니라 수난 복음을 묵상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주셨기를 바랍니다. 객석에서 그냥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주님의 수난기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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