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나 됐을까, 오늘도 뜬 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한 노수자(아녜스·63·서울 면목4동본당)씨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묵주를 움켜쥐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 때문에 앉기도 힘들지만 머릿속에 들어찬 자식들 걱정에 늘 잔 듯 만 듯하다.
‘하느님, 제가 못 나서…, 제가 잘 몰라서….’ 노씨의 기도는 이내 울음이 된다.
천성일까. 노씨도, 먼저 간 남편도 누구 탓할 줄을 모른다. 경북 왜관에 살고 있던 노씨에게 전남 목포가 고향인 남편이 찾아온 것부터가 서로 보듬고 살라는 하느님의 뜻이었는지 모른다. 우연한 펜팔로 알게 된 남편은 1972년 베트남전 파병에서 돌아오자마자 노씨 집을 찾아왔다. 미군부대 군무원이던 친정아버지의 도움으로 서울로 올라와 살림을 차린 게 꼭 42년 전이었다. 양복재단기술을 가지고 있던 남편이 시장 한켠에 단칸방을 얻어 양복점을 열었을 때가 지금껏 살아오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다. 어떻게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도 시장통에 좌판을 열었다. 그러나 소소한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원체 몸이 약했던 노씨는 자식을 낳을 때마다 심한 산후풍을 앓았다. 셋째를 낳고 나서는 성한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낳고나서 산후조리는 고사하고 당장 다음날부터 무너져 내리는 몸을 이끌고 시장통을 찾았으니 쇳덩이라도 견뎌내기 힘들었을 터. 척추관 협착증에, 퇴행성 관절염, 목디스크 등 퇴행성 질환이란 질환은 이때부터 달고 다니는 셈이다.
1977년 대기업이 기성복 제조에 나서면서 양복점을 접고 노점상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던 어느 날 같은 시장통에서 일하던 사람이 남편의 병색을 먼저 알아봤다. 남편은 별일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억지로 끌고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급성간경화에 폐암은 이미 손쓸 시기를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입원하던 그날 남편은 “미안해요”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제가 무식하고 몰라서….” 모든 게 자신의 탓인 양 가슴을 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 이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줄곧 시장통을 떠나지 못했다.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만 믿고 큰아들 이름으로 연대보증을 잘못 서주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믿었던 이로 인해 직장마저 잃게 된 아들은 실의에 빠져 그날 이후 10년째 두문불출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차에 주위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고 나서야 심한 우울증에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또 한 번 자신의 가슴을 쳤다.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좌판마저 접어야 했던 노씨는 몸이 상할 대로 상해 요즘은 5분 이상 서있기도 힘들다. 청소일마저 끊기면서 세 들어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마저 까먹고 있는 형편이다.
“제가 나가서 일이라도 해야 아이 치료도 시키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연골을 대신할 인공관절 수술만이 유일한 희망이지만, 그 또한 자신이 아닌 자식들을 위해서다.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갖은 고통에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 노씨의 삶에 주님이 함께하고 계심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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