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달 27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동시에 성인 반열에 오른다. 교황 두 명이 동시에 시성되는 것은 교회 역사상 처음이다.
성인들은 신앙인들에게 뿐 아니라 인류에 유익한 가치를 확산하고 모범을 보인 이들이다.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또한 교황직의 쇄신과 현대 가톨릭교회의 일대 변혁을 일으킨 주인공이었다. 특히 세계대전과 근대주의 공산·사회주의 등으로 혼란했던 시기를 현명하게 이끌며 세계적인 지도자이자 영적 스승으로서도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두 교황은 교회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 밖을 향하는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들이다. 삶의 매 순간 모든 이들과의 ‘대화’에 노력하고‘평화’구현에 헌신한 두 교황. 다원화된 현대사회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신자들에게 교회쇄신과 세계평화의 주축이었던 두 교황의 모습은 여전히 신앙인들의 큰 모범이다. 이들의 시성 또한 현대교회의 내·외적 쇄신 흐름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두 명의 ‘성인 교황’을 한꺼번에 맞이하는 특별한 날을 앞두고, 이들이 교황으로서 걸어온 여정과 그 의미, 우리가 새롭게 실천해 나가야할 가르침 등을 돌아본다.
■ 시성 과정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시성을 공표하며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은 “두 교황은 모두 세상의 평화를 위해 봉사했으며, 위대한 변화의 시대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팎에서’ 큰 영향을 미쳐 온전히 복음 선포에 헌신하고 세상에 희망과 빛을 전했다”고 전했다.
시성(諡聖)이란 순교자 혹은 성덕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의 탁월한 신앙의 모범을 본받을 수 있도록 성인(聖人)의 품위에 올리는 예식을 일컫는다. 온 교회가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도록 교황이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또한 탁월한 덕성과 활동, 기적 등을 인정받아 시성이 확정됐다.
성인으로 공경받기 위해서는 면밀한 조사와 심사 등의 과정에서 꽤 긴 시간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생애 전반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살펴, 그가 모범적이고 거룩하게 살았는지 판단하기 때문이다. 첫 단계는 교황이 시복시성을 위한 조사를 허락하면서 시작된다. 시복 대상자인 ‘하느님의 종’(Servus Dei) 단계를 거쳐 덕성이 공인되고 또한 그를 통해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확인되면 ‘복자’로 시복된다. 아울러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공인될 때, 그를 성인으로 선언하고 의식을 행할 수 있다. 이 시성은 교황만이 할 수 있는 무류성의 행위다.
요한 23세의 시복 기적은 1966년 교황의 전구를 청한 이탈리아 수녀가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례다. 2005년 파킨슨병을 잃고 있던 프랑스 수녀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로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례 또한 시복 기적으로 인정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23세 시성에 필요한 두 번째 기적 조건을 면제함으로써 시성을 확정지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연 공로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한에 따라 면제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전통적으로 사후 5년 뒤 시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시복시성 절차의 유예 기간을 면제함으로써 이후 발 빠르게 추진됐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은 파두아의 성 안토니오 성인에 이어 최단 기간에 이뤄지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시성이 되면 그의 이름은 미사경본이나 성무일도 기도문에 삽입되고, 전례력에 축일이 도입된다. 교회의 공적 기도에서 그에게 탄원하거나, 성인에게 영예를 돌리기 위해 교회를 봉헌할 수 있게 된다. 또 성체행렬에서 그 유해를 공경하고, 그의 성화상을 그릴 때 천국의 영광스런 빛을 가진 인물로 묘사할 수도 있다.
■ 뛰어난 덕행
요한 23세는 성 베드로의 261번째, 요한 바오로 2세는 264번째 계승자다.
이 두 교황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면모는 사랑 가득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우리 곁을 찾아오던 모습이다. 권위로 똘똘 뭉친 교황으로서가 아니라 교회의 문을 새로 열고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로서의 모습이었다.
그 여정에서 두 교황은 한국교회와의 인연을 깊게 쌓기도 했다. 요한 23세는 서울·대구·광주 대목구를 대교구로 승격시키며 한국교회 성장의 틀을 다지게 이끈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남겼다. 신자들에게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하며 친교를 나눴다. 요한 23세. 그는 생전에 “착하게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모범을 누구보다 여실히 보여줬다. 게다가 온화하고 평범한 농부 같은 인상에서는 엿보기 어려웠던,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변혁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문을 극적으로 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쇄신의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을 위해’ 말하지 않고 ‘교회 자체’에 대해서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며 쇄신과 일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성큼성큼 교회 밖으로 나섰다. 교회 밖으로 나가서는 노동자들과 어린이와 노인들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만나 대화했다. 인류의 평화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교회와 교회가 살아가는 세상의 방향을 바꾸는 여정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임시’ 또는 ‘과도기’ 교황이라고 부르며 그의 역량을 평가 절하했던 이들을 넘어섰다. 지금은 가톨릭신자들 뿐 아니라 성공회, 개신교, 유다인들 또한 요한 23세가 남긴 ‘포용’과 ‘개방’의 유산에 뜻을 함께하려 한다.
교회 역사의 흐름을 바꾼 요한 23세는 2000년 시복됐다. 그의 축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일인 10월 11일이다.
요한 23세가 강조했던 쇄신의 노력은 요한 바오로 2세 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현대인 중 매스미디어를 접하는 이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임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의 이름을 물려받아 ‘요한 바오로 2세’라고 불리길 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역사상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 교황으로 손꼽힌다.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최연소인 58세에 선출, 27여 년간 재임함으로써 역사상 세 번째로 긴 재임 기간을 기록했다. 냉전 시대를 종결하고 화해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전 세계 129개국을 방문하며 ‘순례하는 교황’으로도 불렸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또한 요한 23세와 같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젖히십시오!”라고 소리쳤다. 그의 평생은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매진하는 ‘평화의 사도’로서의 궤적이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밝힌 ‘영웅적 덕행의 삶’또한 세상 곳곳을 방문해 이웃, 형제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는 여정으로 대표된다. 안에서는 가톨릭교회 교리를 현대적인 언어로 알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이 ‘행동하는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수많은 문헌들도 발표했다. 그 안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수호, 문화와 신앙의 교류 등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의 여정은 제삼천년기,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문을 열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의 축일은 교황 즉위일인 10월 22일이다.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삶의 면면은 그들이 왜 그토록 사랑받는 지도자이자 아버지였는지 이야기해준다. 그들의 삶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메시지를 믿게 됐다. 그 사랑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요한 23세(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 1881년 11월 25일 탄생
· 1904년 8월 10일 사제품
· 1925년 5월 19일 주교품
· 1953년 1월 12일 추기경 서임
· 1958년 10월 28일 교황 선출
· 1958년 11월 4일 교황 착좌
· 1962년 10월 11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 1963년 4월 11일 회칙 ‘지상의 평화’ 반포
· 1963년 6월 3일 선종
· 1999년 12월 20일 하느님의 종
· 2000년 9월 3일 시복식
· 2014년 4월 27일 시성식
■ 요한 바오로 2세(카롤 보이티와)
· 1920년 5월 18일 탄생
· 1946년 11월 1일 사제품
· 1958년 9월 28일 주교품
· 1967년 6월 26일 추기경 서임
· 1978년 10월 16일 교황 선출
· 1978년 10월 22일 교황 착좌
· 1979년 3월 4일 회칙 ‘인간의 구원자’ 반포
· 1994년 11월 21일 교서 ‘제삼천년기’ 반포
· 2005년 4월 2일 선종
· 2009년 12월 19일 하느님의 종
· 2011년 5월 1일 시복식
· 2014년 4월 27일 시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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