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부터 2년에 걸쳐 ‘다발성 혈관염’을 치료하던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부터 불치의 판정을 받고 집에 누워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와 권유를 받아들여 통신교리를 시작하게 되었고, 1989년 3월 18일 당시 용인본당 한연흠 신부님으로부터 다섯 식구와 함께 50이란 늦은 나이로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넘게 겨우 겨우 바깥 출입을 하면서 양・한방치료를 거듭하는 가운데 병이 호전됨에 따라 삶에 의욕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기쁨도 잠시, 80세 중반을 넘기신 부모님들은 같은 해 봄·가을로 잇달아 세상을 떠나셨고, 그로부터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삼가동본당이 분가하면서 총회장과 사목위원들이 성물을 비롯 각종 의자와 책상을 보관할 창고, 고구마 심을 1000평의 밭과 건축헌금 등 여러가지 협조를 요청해 왔습니다. 제가 신자이기 때문에 이런 청을 하시는데, 차마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거의 다 들어주다시피 한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2009년 1월에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부터 ‘다발성 악성 방광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불치의 판정을 받고는 허탈한 심정으로 인천성모병원으로 치료 병원을 옮기게 됩니다. 입원 당일부터 9일 기도와 함께 6주간에 걸친 항암제 투여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고통 중에도 틈틈이 미사를 열심히 봉헌했습니다. 그러면서 43일이 지나갔고, 초조한 내 마음을 아는지 조용현 박사가 부르더니 방광내시경을 통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가 보아도 방광 안이 장밋빛같이 너무나도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내시경 고통도 잠시 잊은 채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하고 조 박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1년 1월 8일자로 삼가동본당 서북원 신부님으로부터 총회장 임명장을 받게 됩니다. 임명장을 받아 들고는 소감 발표는 커녕 ‘엉엉’ 우는 가운데 마이크를 해설자에게 되레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임명장을 받은 지 어언 3년이 지난 2014년 2월 26일자로 영광스러운 성체분배권까지 수여 받게 됩니다. 거기다가 지난달 3월 27일 오전 11시에 여의도성모병원 조용현 박사로부터 방광암 완치의 판정을 받습니다.
치유의 은총과 온갖 영광을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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