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가 시력을 잃은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50주년이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나종천(라이문도·62·용인대리구 여주본당)씨가 지나온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히 풀어놓는다. 열두 살 때 망막이 공막에서 벗겨져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상태인 망막박리로 인해 시력을 잃었지만 나종천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세상의 빛은 잃어버렸지만 영원한 빛을 찾기로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았는데, 한 번에 통과를 못해서 예비자 교리를 한 번 더 받았었어요. 점자책이 없으니까 교리 내용은 신부님 강의에만 의지했죠. 그나마 기도문은 선배가 점자로 써줬어요.”
가톨릭맹인선교회 초대 총무를 역임한 나씨는 시각장애인선교를 위해 예비신자용 점자교리서와 신자용 점자성경 보급을 위해 노력했다. 그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 점자책이기 때문이었다. 맹아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함께 점자책을 만들어본 경험이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저와 함께 맹아학교에서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던 친구들조차 졸업하고 취직한 이후에 신앙생활 하는 것을 어려워하더군요. 본당에 가면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 외톨이의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안내를 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나씨는 본당 내 장애인 사목을 위한 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가톨릭맹인선교회가 전국적인 규모로 성장하긴 했지만, 사목 일선에 있는 본당들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한계가 분명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본당 주임 조한영 신부에게 건의해 창단한 ‘함께길벗’이 그 시작이었다. 본당 청각 및 언어장애인들이 모인 함께길벗은 월 1회 정기 모임과 성지순례 등을 통해 친교를 나누고 신앙을 키우는 시간을 갖고 있다. 또한 지난 2013년 시각장애인, 지체장인인, 지적장애인, 뇌병변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로 구성된 여주와희망 합창단을 창단해 첫 연주회를 가졌다.
“사목은 성직자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장애인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장애인들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잘 아니까 신부님이나 주교님이 우리의 사정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고,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노력해야죠.”
나씨는 보다 전문적으로 장애인사목의 접근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가톨릭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용인대리구에서 실시한 사회복지학교에서 함께길벗의 준비과정과 활동에 대해서도 발표하는 등 본당 내 장애인사목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함께길벗이나 여주와희망 합창단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참 좋아들 하세요. 전에는 본당에 나와서 힘없이 있었던 분들이 지금은 나와서 회원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비장애인 신자들과도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변화를 느낄 수 있죠. 이런 변화의 바람이 널리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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