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 창세 22,9-10 】"…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 아들 이사악을 묶어 …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 여러분에게는 영혼의 이런 위대함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아들을 직접 묶어야 할 일도, 칼을 준비할 필요도, 자기 외아들을 죽여야 할 일도 없습니다. … 그러나 적어도 의도에서, 마음에서 성실하십시오. 기뻐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여러분의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여러분 아들의 생명을 위해 사제가 되십시오. 하느님께 봉헌물을 바치는 사제가 운다는 것은 어울리는 행동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으십니까? 주님께서 복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요한 8,39). 잘 보십시오, 이것이 ‘아브라함이 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나 슬퍼하며 그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2코린 9,7)하시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육의 애정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사랑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사랑을 육의 사랑보다 앞에 두었습니다. 그는 육의 애정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필리 1,8), 곧 진리요 지혜며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의 애정을 지닌 자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오리게네스 「창세기 강해」 8,7).
아브라함을 그린다면
우리 가운데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브라함을 어떤 식으로 묘사하려 할까요? 성경이 전하는 그의 모든 행위를 그림 한 장에 담을까요? 아니면 각기 구별되는 여러 장의 연작으로 또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릴까요? 하지만 어느 한 그림엔 아마도 아들을 데리고 나귀를 탄 아브라함과 그 뒤를 따르는 하인들을 그리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그림에는 나귀와 하인들은 아래 머물러 있고, 장작을 진 이사악과 손에 칼과 불을 든 아브라함이 그려져 있겠지요? 그리고 실로, 또 한 그림에는 아이를 묶어 장작에 올려놓은 아브라함이 다른 자세로, 그러니까 오른손에 칼을 쥐고 제사를 시작하려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매번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서로 다른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서간집」 41,22).
“…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창세 22,12).
이 구절에서 ‘이제’라는 말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이 당신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알았다고 하신 것이 마치 전에는 몰랐다는 말 같아섭니다. … “그분은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시는”(다니 13,42 참조) 분이니까요. 이 일들이 기록된 것은 여러분을 위해섭니다. … (오리게네스 「창세기 강해」 8,8).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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