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 창세 22,12 】
"…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이 말씀과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에 대해서 하는 말을 비교해 봅시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로마 8,32). 놀라운 관대함이라는 면에서 하느님께서 인간과 경쟁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죽을 운명을 타고 난 아들을 하느님께 바쳤고 그 아들은 죽음에 처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지 않는 존재로 태어나신 아들을 인류를 위해 죽음에 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시편 116,12).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로마 8,32)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때때로 천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리라고 생각합니까? “네가 너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아들’ 대신 ‘너의 딸’이나 ‘아내’라는 말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요. 또는 “네가 네 돈 또는 세상의 영예, 또는 세상에 대한 야망마저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경멸하며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겼으니”(필리 3,8 참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너는 너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으니”(마태 19,21)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천사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목소리를 듣습니다. …(오리게네스 「창세기 강해」 8,8).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창세 22,13).
이사악은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표상이며, 숫양은 육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숫양은 육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예형
앞에서 우리는 이사악이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숫양도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어째서 이 둘이 다, 그러니까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이사악과 죽임을 당한 숫양이 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기에 적합한지 알아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이 되셨습니다”(요한 1,14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한 면은 위에서 비롯하고 다른 한 면은 인간의 본성과 동정녀의 태에서 비롯합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으셨지만 그것은 육 안에서였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당하셨지만 그것은 육이었고, 숫양은 그것을 나타내는 예형입니다.…이사악은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분은 희생 제물인 동시에 사제이십니다. 영에 따라 참되게, 그분은 아버지께 제물을 바치며, 육에 따라서는 당신 자신이 십자가 제단에 바쳐집니다. 그래서 그분에 관해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쓰여 있는가 하면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시편 110,4)라고 쓰여 있는 것입니다(오리게네스 「창세기 강해」 8,9).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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