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믿어라”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십니다.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나를 믿어라, 내가 다 준비해 놓고 와서 데리고 갈게.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내가 그동안 한 일들을 보고 믿어라. 믿어라, 믿어라, 제발 내 말 좀 믿고 따라와라. 거기엔 너희를 위해 마련한 좋은 것들이 풍성하게 있다. 마음을 열어 믿어봐, 믿어줘. 예수님께서 애원을 하십니다.
필립보를 비롯한 제자들은, “보여주십시오”만 외칩니다. 뭘 더 보여줘야 믿는단 말이냐! 그동안 그렇게 많은 말을 했고, 그렇게 많은 기적들을 눈앞에 펼쳐 보여줬는데, 더 무엇을 원한단 말이냐!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나를 그렇게 보고도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너희들 눈과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이냐? 보고도 못 봤다고 하고,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여주고 들려줘야 하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그동안 찾아헤매였던 것이 바로 길, 진리, 생명이었습니다. 해방의 길, 야훼 하느님을 신앙하는 진리, 이것을 통해 얻게 되는 참 생명을 그들은 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스라엘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 하셨고, 치유와 돌봄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쉼 없이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셨고, 사람들을 맞아들이셨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생각하시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자리로 데리고 가기 위해 직접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30여 년 전에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자리는 피 흘림이었습니다. 한 달 전에 서해 바다에서 하늘 나라로 간 많은 생명들에게 당신께서 준비해주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도 같은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보여주세요. 그러면 당신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피와 어린 영혼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아버지 집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를 우리 각자에게 주실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힘이 없습니다. 우렁차게, “예수님, 믿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지 못합니다. 마음 속에서는 ‘믿고 싶습니다’란 말을 되뇝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당신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일들만으로도 믿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당신만이 진리임을 제 인생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이 아닌 다른 길을 갔을 때, 저는 외로웠고, 슬펐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당신은 길, 진리, 생명으로 우리 모두의 삶에 살아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눈에는 당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아버지를 보여주세요!”
믿고 싶습니다, 예수님. 믿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믿고 당신께서 하셨던 일,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슬퍼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너무나 많습니다. 당신께서 어루만져주셨듯이 저희도 당신의 평화를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을 믿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당신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절실해집니다. 부족한 저희의 믿음을 더해 주소서. 당신을 믿고 싶습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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