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최초의 육사 여생도, 수석 입학’이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입학 후 저의 기도는 “주님! 오늘 훈련에서 낙오하지 않게 해주세요” 였습니다. 매일 아침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벌써 16년 전 일입니다.
1998년 1월 17일 육군사관학교가 여성에게 처음 문호를 개방하던 날 저는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라는 맹랑한 자신감으로 가입교 훈련에 임했습니다. 육사의 가입교 훈련이 무엇인지, 입학하기까지 나에게 어떤 혹독함이 있을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어쩌면 알지 못했기에 감히 그곳에 갈 용기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입교 첫 날, 애국가가 울리고 “지금부터 경어를 생략한다”는 교관들의 명령과 함께 시작된 공포의 시간. 교복을 벗고 전투복으로 갈아입던 그 순간의 긴장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전투복에는 왜 그렇게 단추가 많던지요. 뻑뻑한 전투화 끈을 당기다가 손바닥이 베이고 찢어지고 그렇게 육사의 첫 여자 가입교생으로서 저의 육사생도 되기는 시작됐습니다.
19살 소녀가 몸에 지니기에는 너무 무거운 전투장비를 착용하고 남자 생도들과 열과 오를 맞춰 훈련장까지 뛰어서 이동하는 그 시간은 저에게 두려움이었습니다.
너무도 두렵고 힘들어, 1시간 단위로 눈을 떠서는 아직 기상시간이 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안도하던 그 시절, 매일 오전 6시20분 기상 10분전의 적막과 공포,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티어 낼 수 있을지 너무 막막했기에 “주님!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를 반복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저의 삶 속에서 주님을 가장 간절하게 찾았던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 주일 종교행사는 모든 가입교 생도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었고, 저 역시 10살 첫영성체 이후 미사시간을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미사시간을 기다린 것인지 조용히 쉴 수 있는 평온을 기다린 것인지 아니면 간식을 기다린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 시절 미사시간은 저에게 일주일 중 가장 소중한 1시간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잘 지냈지? 아픈 곳은 없고?” 하시는 신부님의 말씀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고, 늘 들어 익숙했던 성가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미사 1시간이 마치 10분처럼 느껴지던 기적들….
미사 후 수녀님이 손에 꼭 쥐어 주셨던 초콜릿 3개를 몰래 내무실로 가지고 들어와 친구들과 취침 나팔소리를 들으며 입안에 넣을 때의 달콤함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비록 다음날 아침, 쓰레기가 발견돼 교관들에게 엄청난 얼차려를 받긴 했지만요.
주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그 순간이 어쩌면 주님과 가장 가까웠던 축복의 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