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군종교구 군선교단 최고령 부부 선교사 조승수(요셉·79·서울 상봉동본당)·김양순(소화데레사·74)씨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명함에는 이러한 성경구절이 새겨져있다.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지만 단 한 명의 장병이라도 하느님을 알게 하겠다는 군복음화의 열정은 청춘 이상이다.
조승수 선교사는 목표가 있다. ‘3080’, 80세까지 군장병 3000명에게 세례를 주겠다는 뜻이다. 2013년 말까지 조 선교사 부부에게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은 장병은 2810명이다. 조 선교사가 80세가 되는 앞으로 1년 동안 지금처럼 최선을 다 한다면 무난히 3000명 장병이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조 선교사 부부가 세례로 이끈 장병들만으로도 웬만한 본당 3개 이상을 만들 수 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군선교에 매진하는 부부 선교사의 모습에서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라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이 떠오른다. 부부는 올해 1월부터 군선교단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육군 6사단 선교를 시작했고 3사단, 8사단, 9사단, 28사단 등 최전방 부대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조 선교사는 부대를 방문하기 시작한 2005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약 9년450주 동안 선교에 나가지 않은 주일이 다섯 번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부대에서 예비군 훈련이 실시되는 등의 사유로 병사들이 교리교육에 나오기 힘든 상황이어서지 일신상의 사유로 쉰 적은 없다. 부부는 군선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본당과 구치소에서도 교리교사로 봉사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부부는 25년 이상을 냉담했다. 선교사로 열과 성을 다하는 부부를 생각하면 의아한 부분이다. 김양순 선교사는 “저희가 오랜 세월 하느님을 멀리하고 냉담하며 지냈던 시간에 대한 보속으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황해도 조그만 농촌 동네 성공회 공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조 선교사 가족은 1958년 모든 가족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개종만 했을 뿐 신앙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조 선교사는 아내를 만나 1964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김 선교사는 6년 동안 개신교계 여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호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비신자였다. 독실한 신자였던 조 선교사의 어머니가 “결혼 전에 가톨릭 세례를 받으면 좋겠다”고 권고해 결혼 전 세례와 그해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1958년 갑종장교(한국전쟁 중 시작된 장교 양성제도, 1969년 폐지) 147기로 임관한 조 선교사는 1983년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26년간 직업군인 생활을 했다. 직업 특성상 전국으로 임지를 옮겨 다녀야 했고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조 선교사에게 성당에 나가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부임한 부대에 군종교구 성당이 없는 곳이 많아 1971년 이후 냉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부부가 신앙을 다시 찾은 것은 아들의 혼사길이 열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래도 가톨릭신자’라는 생각으로 성당을 찾아 연미사와 생미사도 구분하지 못한 채 아들을 위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1997년, 26년간의 냉담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부부가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자 아들이 이듬해 결혼했다.
조 선교사는 “이기적인 생각에 성당을 다시 찾았던 것인데 하느님은 오묘한 방법으로 우리 부부에게 신앙을 되찾게 하셨다”고 말했다.
2001년에는 막내딸이 아이를 낳고 둘째 날 온 몸이 마비되는 중태에 빠졌을 때 온 가족이 9일기도에 매달렸다. 놀랍게도 막내딸은 10일 만에 몸이 감쪽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의사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진단하는 ‘기적’이었다. 이 기적을 체험한 후 부부는 하느님의 실존을 더욱 굳게 믿고 김 선교사가 먼저 2003년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입학한 데 이어 조 선교사는 3년 후 입학했다.
2005년 1월 교리신학원을 졸업한 김 선교사가 2005년 10월 군종교구 군선교단이 창립되면서 바로 군부대 선교를 시작하자 조 선교사는 처음에는 아내를 위한 ‘운전기사’ 봉사를 하다 2007년부터 선교사로서 아내와 실과 바늘처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부부 선교사는 주일 마다 새벽 같이 집을 나서 선교하고 늦은 저녁 귀가한다. 나갈 때는 힘들지만 들어올 때는 기쁨에 넘친다고 했다. 조 선교사는 선교를 마치고 귀가한 뒤에도 밤 12시가 넘도록 하는 일이 있다. 교리교육에 참가한 병사 한 명 한 명마다 사진과 부모님에게 안부를 전하는 동영상을 군종교구 본당 카페에 올리는 작업이다. 장병들의 부모에게는 일일이 문자를 보내 아들의 소식을 전한다. 군대 간 아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조 선교사 부부는 부모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군복무 부적응 병사에 대한 부모들의 고충을 부대 지휘관에게 전달해 해결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김 선교사는 “대부분의 군부대에서 가톨릭보다 개신교에 병사들이 많이 몰리는데, 저희 부부가 선교하는 부대에서는 카페를 활용하면서 가톨릭을 찾는 병사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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