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김남조 시인이 시집 「심장이 아프다」(문학수첩 / 2013)로, 이경자 소설가가 장편소설 「세 번째 집」(문학동네 / 2013)으로 각각 상을 받았다.
수상작인 시집 「심장이 아프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달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여실히 담아내,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수상작 장편소설 「세 번째 집」은 우리 사회는 포용력과 겸손함을 너무나 필요로 한다는 작가의 의식을 보다 짙게 드러낸 작품이다.
◎… 두 수상자는 가톨릭 문단에서뿐 아니라 한국 문단의 원로로서 깊이 있는 문학세계를 일군 작가들이다. 특히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통해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이들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러한 작가들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교계에서는 물론 문학계의 유명 선·후배 작가 다수가 시상식 일정을 함께했다. 또 김형영·김종필 시인과 시조시인 조오현 큰 스님 등도 시상식에 참가해 수상자들과 주관 및 후원사에 축하인사를 전했다.
◎… 시상을 축하하고 수상자 등을 격려하기 위해 함께 자리한 조환길 대주교(대구대교구장)는 신학생 시절, 김남조 시인이 강연을 통해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 인간적 사랑을 전해줬던 일화를 소개하며 김 시인에게 존경을 표했다.
특히 조 대주교는 “두 분 수상자들은 가톨릭 문단뿐 아니라 한국 문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르침을 글로써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작가들”이라며 인사를 전했다.
조 대주교는 이어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물질 중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톨릭정신을 일깨우는 문학작품은 더없이 소중하다”며 “훌륭한 작품들은 무엇보다 삶을 향해서 새롭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 가톨릭신문사 사장 황용식 신부가 김남조 시인에게 시상하고 있다.
▲ 이순우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이경자 소설가에게 시상하고 있다.
◎… 올해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유안진 시인과 한국가톨릭문인회장 오정희 소설가 등도 참가해 관심을 모았다.
유안진 시인은 심사평을 통해 김남조 시인의 작품에서는 “한국 시단의 거목 김 선생님께서 평생 성취해 오신 시적 위상이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전했다. 이어 “기교를 넘어선 무기교의 경지, 새로움을 넘어서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경지에서 살과 물기까지 다 버린 골격과 뼈대가 최대 최고의 진실이고 감동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오정희 소설가도 “이경자 소설가는 「세 번째 집」에서 이 시대 한국사회의 초상과 현주소를 생생한 현실감으로 보여주면서, 사랑과 상처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고 평가했다.
◎… 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인 신달자 시인은 시상 경과 발표를 통해 “가톨릭문학상이 처음 제정되던 때, 이 상의 시상이 과연 얼마나 이어질까 염려스러웠던 것도 사실인데, 벌써 17회를 맞이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울컥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신 시인은 “지난 17년의 세월에는 가톨릭문학상을 운영하는 가톨릭신문사의 의지와 후원사인 우리은행의 사랑이 든든히 자리하고 있었다”며 “곧 다가올 20주년 등의 시상식에서는 한국 문단에서 더욱 빛나고 위상 높은 문학상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독려했다.
■ 수상 소감 - 김남조 시인
"삶·신앙의 소중함, 가장 높은 가치"
가톨릭문학상의 수상 통보는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오늘 저의 입장으로서는 상을 드리는 쪽에 있어야 마땅하고 실지로도 그래왔었습니다. 그러나 이 상을 받는 일은 가톨릭 정신의 구현이라는 문학적 지표에 동참한 의미가 되겠기에, 기쁘고 영광스럽게 이 자리에 지금 서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근래 심장에 관한 치료를 받게 되었고 좋은 결과를 얻어 감사하고 있습니다만, 그 과정 중에 한 때는 어려운 고비가 있었습니다. 이 때 사람이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태풍 속의 연기와 같은 작고 미약한 존재로서 아득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추락의 느낌을 실감하였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단어들과 제가 품었었던 여러 상념들이 그 하나하나가 깊고 무겁고 공포스럽고 오묘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의 삶은 무한 가치이기에 어느 때라도 에누리 없이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소신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삶의 소중함, 신앙의 소중함을 가장 높은 가치와 소명으로 생각하며, 문학은 여기서 얻는 열매 그 하나로 여겨집니다. 문학은 삶에 견주어 더 소박하고 더 겸손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느낌도 아울러 갖습니다.
남은 세월 열심히 생각하고, 좋은 글을 쓰도록 애쓰겠습니다.
■ 수상 소감 - 이경자 소설가
“성당에서 싹 튼 나만의 문학 세계”
가톨릭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큰 ‘발견’ 또한 하게 됐습니다.
저는 해방 때는 북한 땅이었다가, 6·25때는 전쟁터 그리고 휴전 이후에는 남한이 된 땅에서 성장했습니다. 이 땅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저의 유년기는 폭력, 상처, 억압, 주눅들림 등으로 상징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환경 안에서 저의 심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형성됐지요.
제가 가톨릭문학상을 받는다고 하자, 불현듯 6살 때부터 눈만 뜨면 쫓아가곤 하던 언덕 위 양양성당에서 만났던 천주님과 성모마리아, 예수님, 토마스 신부님을 기억해냈습니다. 저는 매일같이 성당에 뛰어올라가, 그곳에서 폭력적이고 고통스럽고 피폐한 세상 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성당에서 지낸 시간은 제게 꿈을 갖게 했고, 그 꿈은 바로 저의 문학 정신이자 문학 세계가 되었습니다.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평화스럽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억압 없고 차별 없고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을 만들어내는 길이 무엇인지 천착하는 과정이 바로 제 문학의 길이었습니다.
이즈음 기운이 떨어져 좌절할 수 있던 상황에서, 가톨릭 문학상 수상은 제가 다음 작품을 쓸 수 있게 하는 튼튼한 디딤돌이자 지팡이가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