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는 의심하였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이야기도 나눴고, 함께 빵과 물고기도 나눠 먹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너무너무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를 하고도 의심을 합니다. 무엇을 의심한 것일까요? 부활, 예수님, 가르침, 기적, 그동안 보고 들은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중에 일부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제자들이 의심을 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상처 난 손과 옆구리를 보고도 어떻게 의심을 품을 수 있는지!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는 제자들까지도 파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을 굳게 믿는 제자들 몇 명만 따로 불러서 앞으로 할 일을 말씀하시며 파견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인 모든 제자들에게 세상 끝까지 너희와 같이 있을 테니 가서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우린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가도 능력이 안 되면 또 일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음도 없고, 능력도 시원치 않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별 볼 일 없는 제자들에게 맡기십니다. 어쩜 이렇게 철저히 믿으실 수 있으신지! 예수님의 무모함이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이 무모함이 마태오 복음 28장에서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곳곳에서 예수님의 미련하기까지 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삶이 너무 힘들어 감실 앞에 앉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위로와 편안함. 삶이 너무 어려워서 십자고상 앞에서 원망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만난 예수님의 고통과 그 고통 안에서도 우리를 따스하게 바라봐주시는 연민과 믿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러 성당에 들어갔을 때, 저 앞에 앉아서 기도하는 그 사람을 봤을 때, 우리가 느낀 예수님의 기적. 우리는 자주 의심하면서 삽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에 활동하고 계신가? 성령이 나를 하느님께로 이끌고 계신가?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돌보고 계신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를 하면서도 의심하는 제자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만 내가,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했던가요? 우리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달거나 쓰거나 맵거나 짜거나 어떤 맛이든지 꼭꼭 씹어 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달달할 때나 씁쓸할 때나 언제나 우리를 믿고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내가 선하고 착실해야 이뻐하실거라 믿습니까? 성당 열심히 나가고 봉사활동 잘해야 예수님 앞에 나갈 면목이 섭니까? 더러운 것을 묻히고 예수님 앞에 나가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앞에 지금 못 나가고 자꾸 내일, 조금 있다가, 이것만 어떻게 잘 해결하고 나면, 다음 달부터, 내년부터라는 이유를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의심하는 제자들을 감싸 안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하는 그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깨끗하고 선하고 착실하기를 바라시는 그런 속 좁은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선하면 그 모습으로 좋아하시고, 부족하고 아프고 더러우면 또, 그대로 우리를 믿으십니다.
더러 우리는 의심을 합니다. 나 자신을 의심하고, 예수님을 의심합니다. 의심은 믿음 앞에서 힘을 못 씁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느껴보세요. 의심이 달아나고 있습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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