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보좌 신부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할까 한다. 군대 기간을 포함해 10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한 끝에 나는 1999년 1월 15일에 사제품을 받았다.
내가 발령을 받고 처음으로 생활한 곳은 이천본당이다. 내가 모시고 살아야 될 주임 신부님은 오랜 시간 안법고등학교장을 하시고 정년퇴직하신 유진선 신부님이셨다. 당시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갓 서품을 받은 보좌신부에게 하얗게 머리가 센 어른 주임신부님은 너무나 어려운 분이셨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기에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다행히 주임이셨던 유 신부님은 너무나 편하게 나를 대해 주셨다.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일을 하던 중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유 신부님이 나를 불러 앉혀 놓으시고 말씀하셨다. “자네는 주임이 아니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때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가 많이 잘못됐다고 지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뒤이어 이런 말씀이 들려왔다. “주임이 아닌데 무엇을 그리 책임지려 하나? 본당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주임인 내가 책임질 테니 자네는 신학교 때 배우면서 하고 싶었던 것이 있으면 마음껏 해보게. 보좌 때 실수하지 않으면 언제 실수를 하나. 주임신부 때는 실수해서는 안되네.”
이어지는 말씀을 들으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역사에 나오는 영웅들이 휘하 장병과 신하들을 감동시켜 목숨 바쳐 충성하도록 만들었던 숱한 일화들처럼 이분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신자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나대는 보좌신부’, ‘보좌인지 주임인지 헷갈린다’ 이천본당 보좌신부를 하는 동안뿐만 아니라 그 후 호평본당, 조원동본당의 보좌신부를 하며 나는 신자들로부터 ‘주임 같은 보좌신부’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철없고 소심한 보좌신부에게 큰 힘을 주셨던 주임신부님, 유진선 신부님이 지금 많이 편찮으시다.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병문안을 다녀 온지 너무 오래되었다. 너무나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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