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호~”
시설에서 식사하기 좋게 잘 나온 음식이건만 행여나 뜨거울세라 한 술, 한 술 정성스레 바람을 불어가며 환자에게 음식을 떠준다. 주교들의 첫 봉사는 몸을 가눌 수 없어 자력으로 식사를 할 수 없는 환자들의 식사를 돕는 일이다. 다섯 주교들은 각각 환자들의 식사를 도왔다. 환자의 말을 들으려 몸을 숙여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마치 가족인 듯, 오랜 친구인 듯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느새 환자들의 입가에도 주교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어 배식 봉사에도 120여 명이 식사를 받는 동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짐없이 말을 건넨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랑을 담아서 듬뿍듬뿍 드릴게”. 평균연령 67세 주교들이 주는 음식에 환자와 봉사자, 직원들은 마냥 기쁘다.
성모꽃마을은 암으로 고통받는 이들, 특히 말기암으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무료 호스피스시설이다. 특히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난으로 호스피스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암은 여러 질병 중에서도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는 병이지만 말기암환자 중 편안하고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이 암에 따르는 큰 통증과 구토, 부종 등 갖가지 증상에 시달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현실이다. 육신의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환자들이 사회와 단절되고 치료비나 간호로 지친 가족과도 소원해질 뿐 아니라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고립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모꽃마을을 찾기 전 주교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하지만 이곳에서 주교들을 맞이한 환자들의 모습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밝고 환한 미소 띤 얼굴이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김운회 주교는 “여기(성모꽃마을) 오는 동안 호스피스 환자분들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인데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마음이 무거웠다”면서 “환자들이 밝고 기쁘게 생활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소에도 밝은 모습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려는 환자들이지만, 이날 한층 더 모습이 밝았던 데는 주교들의 방문도 한 몫을 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환자들이 통증으로 간호사를 호출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주교들이 방문한 동안 환자의 호출은 한 건도 없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주교들의 방문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쁜 날이었던 것이다. 성모꽃마을 호스피스팀장 김인숙(마가렛마리아)씨는 “기쁨이 가득하면 아픔도 사라진다고 하는데 지금 환자들이 그런 것 같다”고 놀라워하며 “환자들에게는 지금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활기 있고 기쁨이 있는 얼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주교님들이 환자들에게 많은 활기를 주셨다”고 전했다.
“주교님, 잠시 쉬시겠어요? 다음에는 105실 환자분이 기도를 부탁하셨는데….”
직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대신 발걸음이 먼저 움직였다. 휴식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더 돌보려 했다. 이미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침상목욕과 휠체어 목욕, 머리감기와 발 씻기기 등 육체적으로 힘을 쓰는 봉사를 연달아 해 기운이 빠진 모습이 역력했지만, 주교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병의 고통과 싸우며 죽음을 맞닥뜨린 환자들이 밝은 모습으로 주교들을 맞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서일까. 주교들은 봉사에 더욱 투신했다. 하루 방문하고 마는 행사로 여길 수도 있었지만, 봉사하는 주교들도 봉사를 받는 환자들도 그렇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봉사시간이 길고 넉넉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이날 머리감기 봉사를 받은 조규현(시몬·65)씨는 “주교님이 머리를 감겨주시고 이야기하시는 데서 진심이 느껴져 주교님과의 만남이 단순한 행사로 생각되지 않았다”면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곳에서 주교님을 만나 기분도 좋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느님 뜻대로 맡겨드리면 주님께서 도우실 겁니다.”
환자들과의 헤어짐은 안수와 기도 안에서 이뤄졌다. 주교들은 봉사하는 중간중간에도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헤어지기 전 모든 환자들을 돌아가며 안수와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을 꼭 부여잡고 기도하고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는 동안 환자들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주교들에게 응답했다. 한 환자는 “내가 이런 복을 받아도 되나요”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주교들이 성모꽃마을을 방문하기로 예정된 뒤 주교들의 방문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15명의 환자들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았다. 주교들은 연도와 미사로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기로 약속했다.
▲ 29일 무료 호스피스시설 성모꽃마을에서 환자들을 위해 기도와 함께 목욕 배식 활동을 하고 있는 주교단. 위에서부터 조환길 대주교, 유수일 주교, 최기산 주교, 김운회 주교, 장봉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