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한국 땅에서 가난한 이들 곁을 지켜온 ‘빈민의 아버지’ 예수회 정일우(John Vincent Daly) 신부가 2일 오후 7시50분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향년 79세.
고인은 한국교회는 물론 사회에서도 두루 존경과 사랑을 받은 빛과 같은 존재였다.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자청해 판자촌을 찾아들어간 빈민사목의 대부이자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 지도신부이기도 했다.
1935년 미국 일리노이주 필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 신부는 18살 때 미국 예수회 위스칸신 관구에 입회했다.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고인은 25살이던 1960년 9월 한국에 들어와 3년간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와 철학을 가르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공부한 뒤 1966년 6월 사제품을 받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줄곧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아왔다.
고인은 한국 예수회 수련원 책임을 맡아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복음을 입으로만 전하고 있다는 회의 속에 1973년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고(故) 제정구(바오로, 1944~1999) 의원을 만나 그와 함께 1975년 양평동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1977년부터 복음자리, 한독주택, 목화마을을 차례로 건립했다. 가난한 이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당시, 고인은 정부의 살인적인 철거정책에 내몰리는 철거민 곁을 지키며 청계천, 양평동, 상계동 등에서 늘 눈물로 함께했다.
처음 서양인 신부를 대한 철거민들은 아무런 가식 없이 자신들과 함께 울고 웃어주는 정 신부를 이내 자신들을 찾아 온 예수처럼 반겼다. 양평동 판자촌마저 철거당한 빈민 170가구와 함께 경기도 시흥 소래면 신천리로 옮겨간 정 신부는 오랜 친구이기도 했던 빈민운동가 고(故) 제정구씨 등과 함께 복음자리공동체를 꾸려 가난한 이들 속에서 온전히 가난한 이가 되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86년 제정구 의원과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70살 생일을 앞두고 무려 63일간 지속한 단식으로 죽음 직전에 이를 정도로 몸이 상하는 바람에 그동안 서울 평창동 성이냐시오집에서 요양해왔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4일 오전 8시30분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봉헌됐으며 장지는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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