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 주변 혹은 집과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의 벌판에 수수와 땅콩을 가꾸는데, 마치 넓은 들판에 초목이 펼쳐져 있듯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특별한 구획 없이 집을 짓고 땅을 점유하며 살고 있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울타리와 함께 정리되어 있는 땅이 본당 소유의 밭입니다.
펄벅의 소설 ‘대지’, 그리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는 땅을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농경민족에게 땅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땅에서 나오는 소출이 주는 혜택 그 이상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느끼는 포근함과 사람들의 땅에 대한 강한 애착과 소유욕에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유목민족인 딩카족의 문화에서 땅은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인듯 합니다. 남한의 6배가 넘는 면적의 땅에 고작 일천만이 겨우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남수단. 그리고 산은커녕 언덕조차 찾아보기 힘든 평평한 지형에서 보이는 것은 광활한 벌판입니다. 수도인 주바처럼 번화한 거주지만 아니라면 땅에 관한 다툼 없이 어디서든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딩카족들 사이에서 서로의 소를 훔쳐오기 위한 싸움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건기에는 황량한 벌판이 우기에는 눈부신 연두색 수풀로 넘실댑니다. 사람들은 건기에 누렇게 말라버린 풀밭에 불을 놓아 태우고 우기가 시작되면 그 위에 밭을 일굽니다. 소 쟁기를 이용하여 밭을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쟁기질도 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수수의 경우 그냥 땅에 뿌려 두기만 해도 우기에 강한 비가 지표면을 두들겨서 저절로 심고 자라게 한다고 합니다. 수십마리의 소를 몰고 벌판을 돌아다니는 목동들 덕분에 소똥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아무도 소똥을 모으거나 퇴비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잡초 제거조차 하지 않습니다.
늘 직접 경작하던 본당 소유의 밭을 올해는 쟁기로 갈기만 하고 경작은 여러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맡겨보고자 했습니다. 같은 땅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과 노력 여부에 의해 소출이 달라질 수 있음을 경쟁을 통해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가 되는 것도 꽤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주말농장’을 생각하고 떠올린 아이디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땅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텃밭을 분양하고 싶다는 계획을 말하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를 듣고 난 한 청년이 대답합니다.
“아부나, 본당 밭의 크기는 한 가정이 농사짓기에도 모자란 면적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분양이라니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많이 당황했습니다. 400제곱미터나 되는 밭이 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한 가정에게도 모자란 면적이라니….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어디에다가 각자의 어마어마한 면적의 밭을 두고 있단 말인가?
그에 의하면 아강그리알 사람들 모두 다른 지역에 밭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강그리알이 ‘오래되어 농사짓기 적합하지 않은 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척박한 땅, 비옥한 땅이 아닌 새 땅, 오래된 땅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아마도 아강그리알은 예전에 농사를 많이 지어서 지력이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땅의 힘이 약해졌다는 말은 이들 입장에서는 생각해내기 힘든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큰둥한 호응에 가족텃밭 운영 계획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늘 심던 땅콩을 올해도 심었습니다. 작은 텃밭이 가져다주는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기쁨은 저만의 행복한 상상인 듯합니다.
“대지는 마치 어머니와 같다.”
작은 땅에서 풍요로움을 꿈꾸며 땅을 일구는 사람들과 넓은 땅에서 자연이 일구어내는 풍요를 꿈꾸며 사는 사람들은 이 말을 과연 다르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 아강그리알본당 텃밭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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