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창신부 중 한 명은 그야말로 페북(페이스북) 유명인사다. 사회교리에 대한 해박하고도 선명한 해설은 물론이거니와, 사회교리를 어떻게 현실의 사안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까지 막힘이 없다. 결정적으로 그 신부의 말은 너무 재미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유머와 버무려 따뜻한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데 - 어떤 때는 그 웃음이 너무 소소하면서도 의미심장하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언젠가 한 번은 이 친구가 별다른 설명 없이 노란 새끼오리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다. 노란 새끼오리 한 마리가 작은 상자에 담겨 자동차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과연 그 뜬금없는 오리 사진의 구체적인 정보적 효용은 무엇일까? 그 사진이 오리의 시세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오리를 살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나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 평범한 사진의 존재는 뜻밖에도 정보의 참된 효용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을 매우 따뜻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노란’ 정보가 일방적인 형태로 - 혹은 ‘위압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리고 한 정보가 ‘일방적으로’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서 페이스북은 매우 특화된 힘을 발휘한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다 보면 어느새 정보를 매개로 나와 상대방 사이의 끈이 연결된다. 정보는 그저 전달되는 수준을 넘어, 관계를 매개한다.
차가운 기계와 같은 자동차, 앞자리도 아닌 뒷자리, 거기에 노란색, 생명, 게다가 봄 - 이 조합들이 보여주는 생활세계의 한 단면은 분명 사람들의 어떤 실존감각을 일깨우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 단순한 사진을 향해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좋아요’를 외치고, 그 자리엔 그들이 이해한 그 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감정들 - 그리고 사진을 올린 신부의 마음에 대한 공감들이 댓글의 형태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때의 정보는, 일방적으로 던져지거나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과 반응의 연속 속에서 마치 활동성과 관계성을 지닌 일종의 생명체와도 같이 존재한다. 서로의 마음 안에서 반응하고 공유되며, 그렇게 같은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 묘한 집단의식 - 공동체 의식으로 진화하기 전 단계의 어떤 의식을 불러일으키면서 말이다.
정보의 역할에 대한 교회의 견해는 분명하다. SNS를 포함한 미디어 공간 안에서, 정보는 물건을 팔거나 사람을 회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의 참된 효용은 정보의 ‘나눔’(sharing)과 ‘반응들로 가득 찬’ 공유에 있으며, 그렇게 공유된 정보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형성에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구성하지 않았던가?) 이상적인 형태의 정보 유통은 ‘관계’를 생산한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SNS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공유와 반응을 통한 정보의 생명력과 공동체 형성의 관계를 깊이 통찰하고 있다는 점 - 바로 여기에 또한 오래된 교회의 새로운 지혜가 있다.(그러고 보니 노란 오리의 힘이 참 대단하다.)
1999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으며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에서 ‘매스컴과 종교의 관계 연구’로 신문방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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