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육사생도 생활 동안 가장 힘든 훈련 중 하나가 2학년 하기군사훈련에서 실시되는 2주간의 유격훈련이었습니다.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1주간의 체력코스와 1주간의 야간정찰 과정으로 이뤄지는 유격훈련은 지금 생각해도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유격훈련 동안 생도들은 이름 대신 ‘올빼미’로 불립니다. 빨간 모자의 교관과 조교들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올빼미들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습니다.
유격훈련장은 산속에 있고 그곳까지 뛰어서 이동하면 온 몸은 마치 비를 맞은 듯 땀으로 흥건해 집니다. 숨이 막혀서 쓰러질 것 같은 순간, 어김없이 교관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각종 장애물을 넘기 전 몸풀기 훈련(?)에 해당하는 PT체조는 시작됩니다.
올빼미들은 열심히 구호를 붙이면서 PT체조를 해야 하는데 교관이 “마지막 반복 구호는 생략한다”고 지시하면, 250명 훈련생 모두는 목이 터져라 외쳐야 했던 구호를 마지막 동작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는 정신도 혼미해져 마지막 구호를 외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교관의 명령 “올빼미 고지 한 바퀴!” 선착순 훈련입니다.
줄을 잡고 언덕을 기어 오른 뒤 상당한 거리를 뛰어야 하는 얼차려는 훈련생 모두에게 너무도 끔직한 일이었기에, 반복구호를 외친 동기생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 보겠다고 동기생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는 모습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저는 손에 흥건한 땀 때문에 줄을 잡을 수 없었고 팔의 힘이 약해서 기어오를 수 없는 그 언덕을 바라보며,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발 밑에서 누군가 저를 밀어 올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분명 누군가가 제가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조금 전 반복 구호를 외쳤던, 그래서 제가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그 동기생이었습니다. 자기도 힘들 텐데, 누굴 도와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닐 텐데 충분히 저를 밀치고 먼저 올라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축 처져 있는 제 발을 자신의 두 팔로 받쳐 올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던 마음, 줄을 놓고 그냥 주저앉고 싶었는데…. 밑에서 저를 도와주는 친구를 보니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줄을 잡고 언덕을 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육체적 한계에 부딪혀 포기해야겠다고 체념했던 그 순간, 저에게 내밀어 주었던 친구의 손길은 제가 다시 힘을 얻어 버거운 유격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에 어김없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주님, 그분이 유격장에서 그 동기생의 모습으로 저를 돕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주님께서 저를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도구로 쓰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살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