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 연출 김재엽
째깍째깍. 하루 세 번 ‘배꼽시계’는 어김없이 울린다. 이 ‘시계’를 좀 더 확대해서 우리 삶에 적용해 말하자면, 누구나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여 대상이 누구든 생의 한가운데를 잘라내어 무대에 올린다면 그것 또한 한 편의 근사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코 그 어떤 것과도 중첩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펼쳐질지 누가 알겠는가. 물론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질곡 없이 밋밋해도 관계없다. 그 사람만의 고유한 역사이자 시간이기에 채워진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갈채를 보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여기 한 역사가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여인의 남편이며 두 아들을 둔 한 아비의 역사. 그가 마주했던, 그리고 마주하고 있는 시간 안에 자신의 아들들 또한 살아 숨 쉬고 있다. 전체 2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극에서 1막은 ‘라이방’ 대통령과 아버지와의 조금은 애매한 듯 중첩되는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두 번째 막은 아들 재엽과 ‘대머리’ 대통령 재직 시설의 에피소드를 축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풍경을 살아온 한 개인의 사적 체험을 녹여 엮어낸다. 미시적 개인사를 통해 드러나는 거시적 역사를 들여다보는 방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굵직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시간을 살아낸 개인의 역사는 어떠했는가를 조명한다. 한 아비의 역사는 관객들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듯 보인다. 재밌는 사실은 미시적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거시적 역사는 정치적 위기들을 지나치지 않고 분명히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개인적 체험과 이야기가 그려지는 무대 위의 환영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발 딛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게끔 한다. 분명 과거를 다룬 작품임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연극은 현재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풍경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을 읽어내는 나의 눈이 어둡기 때문일까.
나는 지금 내 연대기의 한 페이지를 어떤 내용으로 채워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연대기에 대한 평가는 분명 하늘 대전에 나서는 날 그분께서 하실 터이니 소소한 하루라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을 뿐. 그렇다고 화려하고 눈에 띄는 것들로 채워지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 그리고 한 자락의 그분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유와, 연대기의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또 하루를 허락하심에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극을 관통하며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반복하여 극중 아버지의 입을 통해 발설되는 한 문장이 뇌리에 남는다. “to be, or not to be”.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이다. 나는 그의 문장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2004년 서품을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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