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초등학교 시절 저는 월말고사 전 주일미사에서 영성체를 하고 난 뒤 이렇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예수님, 내일 시험 잘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공부한 것들 시험에 나오게 해주세요.” 어린 저에게 예수님은 시험 잘 볼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다고 시험을 잘 보았을 때, 예수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험을 못 쳤을 때, 예수님께 원망하며 왜 문제를 이렇게 어렵게, 내가 공부 안 한 것만 내도록 했냐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예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좌지우지 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힘으로, 내가 알아서 인생을 개척하면서 사는 것이지, 예수님께 의지해서 뭐 도움받으며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 따라 주일 미사만 참석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성체를 영해도 제 마음은 예수님은 나와 그다지 상관이 없는 멀찍이 계신 분이셨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예수님께서는 제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성당 활동을 시작하면서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졌습니다.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제게 들어왔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주시는 분을 넘어서,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서, 온 세상을 당신께서 창조하셨고, 계속해서 사랑으로 창조해 가신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그 큰 사랑 안에 제가 있다는 것, 예수님께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하느님이셨습니다.
얼마 전 저는 수련형제들과 함께 설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수렴동 계곡에서 시작해서 공룡능선을 타고 대청봉을 올랐습니다. 공룡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접한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관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우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까가지는 듯한 절벽, 그 절벽 틈 사이에서 자라는 소나무들, 웅장한 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예수님은 창조주 하느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계신 고정된 분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하시는 분이신가? 우리들 모습이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내 맘 알아주고, 도와주는 고마운 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에 별 상관없는 분으로 밀쳐두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많은 시간은 그저 좋은 이야기일 뿐 내게 다가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작은 분, 그저 그런 분, 훌륭한 선인 정도로 보고 있을까요? 우리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님의 모습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께서 내 인생 구석구석에서 어떻게 활동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분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아플 때, 울고 있을 때, 혼자였을 때, 화났을 때, 기쁠 때, 행복했을 때,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냐면, 모세에게 말씀해주신 것처럼,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신 분이십니다.(탈출기 3장 14절) 우리가 예수님을 작게 만들던, 거부하던, 받아들이던,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 곁을 지켜주십니다. 아쉬운 것은 우리가 이것을 가끔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만 그게 어디입니까? 지금 내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으로 곁에 계신지 가만히 눈 감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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