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지에 부임한지 올해로 어느새 9년째가 된다. 우리나라는 삼천리 방방곡곡이 순교성지라 할 만큼 천주교 박해가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도처에서 목숨을 바쳐 주님을 증거한 순교의 땅이다.
교구에만 현재까지 성지가 15군데에 이른다. 이조 말기 정조 사후 숱한 천주교 대박해를 거치면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치명한 둘레 5743m의 수원화성은 2000년 대희년에 북수동성당을 중심으로 순교성지로 선포됐다. 그리고 2007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화성의 화자는 ‘아름다울 화(華)’자로 수원화성은 ‘수원의 아름다운 성’이란 뜻이다.
성지에 부임하자마자 수원화성의 박해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수원성당(현 북수동성당)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일이 제일 급선무였다.
성당이 성지로 선포되기 전인 1994년에 1년간 본당 보좌신부로 있었던 인연으로 2006년 주임신부로 부임하게 되자 나름대로 감회가 깊었고, 곧바로 성지개발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정조대왕은 1776년 24세에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등극했는데, 한양 궁궐에 학문연구소인 규장각을 설치, 젊은 인재들을 폭넓게 양성했고, 서양문물을 적극 수용한 남인파 천주교 학자 인재를 대거 등용했으며, 당시 특정 기득권층에서 벼슬을 독점하는 벌열정치를 타파하고자 탕평정치를 펼치는 한편, 왕권강화와 함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모순을 극복하려 모든 분야의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정적들의 모략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왕위에 오른 정조는 대관식 후 첫 이야기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그들 앞에서 공언했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무엇보다도 뒤주에 8일 동안 갇혀 굶어 죽은 부친 사도세자의 명예회복과 원혼을 풀어 드릴 계획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리하여 사도세자의 묘를 당대 최고의 명당자리로 알려진 수원으로 천봉하는 계획을 결행하게 됐고 마침내 수원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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