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만히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나는 누구 때문에 살았지?’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누구 때문에 살다니, 그냥 사는 거지. 우리의 오늘, 어제, 지난날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간 것입니까? 이유도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허송세월 보낸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터로 갔습니다.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우리는 정말 열심히 한눈팔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하루를 돌아보니, 내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아왔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한심한 생각마저 듭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착하게, 열심히 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잘 못 살아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믿고, 사랑하고 희생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처를 더 많이, 깊게 받기도 했습니다. 믿고 맡겼는데 배신당하고 피해를 봤습니다. 사랑을 줬는데 돌아온 것은 원망과 투정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잘 못 보고 잘 못 대한 것입니까? 사람 볼 줄 모르고 모질지 못해서 당하기만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독하지도 못하고, 모질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험한 소리를 못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마음 졸이면서 살았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수많은 순교로 신앙을 증거한 우리 조상들이 순하게, 착하게, 열심히 믿고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선조들과 우리를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선조들과 우리는 ‘의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뺏겼고,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독하게 우리를 대하는 그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가족 안에서, 이웃과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 시기와 질투하면서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착했고, 순했고, 열심히 살았던 우리가 어느새 모질고 독해져서 세상을 쉽게 살려고 합니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믿어버렸습니다. 나도 별수 없는 세상의 그저 그런 인간이지. 내가 무슨 큰 영광 볼 거라고 독야청청하겠어. 세상에 묻어서 조용히 살면 되는 거야. 나도 나약한 한 인간이야. 하느님께서도 어쩌지 못하시는데 내가 뭘!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그분의 모범을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처럼 살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조금 견뎠습니다. 분명 그 견디는 시간은 힘들었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살며시 우리는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하느님을 멀리하며 성령의 활동을 잊고, 묻어버렸습니다.
다시 마음을 돌려봅니다. “예수님, 제게 견딜 힘을 주세요. 제가 당신처럼 선하고 아름답고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 부족한 믿음을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주세요. 당신의 마음으로 북돋워 주세요.”
우리에게는 모범을 보여주신 김대건 신부님과 순교하신 신앙의 선조들이 많습니다. 그분들께서 기도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조금 더 견디어보자.” 조금 더, 조금만 더 견뎌서 끝까지 견뎌냅시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위해 살아갑시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