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했다. 아니, 처참하다는 이상의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집안 여기저기 널려있는 쓰레기는 둘째치고 코를 자극하는 짙은 암모니아 냄새는 당장 머리까지 아프게 만들었다.
비스코트-알드리히 증후군(Wiskott-Aldrich syndrome). 이름마저 생소한 병을 앓고 있는 최세림(초4)군의 집을 찾은 날, 기자는 난생 처음하는 체험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감추느라 전전긍긍해야 했다.
도대체 이게 집인가, 축사인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딱 보아도 어딘가 큰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세림이의 어머니 조상희(아가다·46·서울 이문동본당)씨와 마주앉고서야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조씨도 악성빈혈로 오래 앉아있기 힘들어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내야 하는 형편. 누나 정은(21)씨도, 형 성림(14)군도 아프다. 아버지 원식(50)씨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지방을 전전하며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아등바등하지만 여의치 않다. 여동생 세은(초4)양만 성한 편이다.
세림이가 앓고 있는 질환은 X염색체의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 희귀 난치병. 세림이를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단 3명만이 앓고 있는 병이다. 유아기에는 아토피성 피부염, 폐렴, 폐혈증, 중이염, 피부 습진 등이 나타나지만, 청소년기 이전에 중증 감염이나 혈소판 감소로 인한 출혈로 대부분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림이가 갓 돌을 지났을 때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처음 알게 된 병이다. 혈소판 수치는 마이크로리터(㎕)당 15만 이상이 정상인데 세림이는 9000을 넘지 못한다. 혈소판이 부족해 상처가 한 번 생기면 피도 잘 멎지 않을 뿐 아니라 잘 낫지도 않는다. 코피가 나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로 쏟게 되고 조금만 피부에 충격이 가해져도 멍이 들어 몇 주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림이는 온 몸에 늘 멍자국을 달고 다닌다.
세림이의 병은 자기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발병 때부터 지금껏 10년 넘게 2주마다 한 번씩 꼬박꼬박 병원을 오가며 혈소판 수치를 체크하고,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이 보이면 병원 응급실을 들락거리느라 어머니 조씨의 건강도 상할 대로 상해 이제 제 한 몸 운신하기도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다. 덩달아 다른 자식들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크고 작은 병들을 달고 다닌다.
축구선수가 꿈인 세림이는 같은 또래들처럼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도, 어울릴 수도 없다. 꿈은 고사하고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조혈모세포 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세림이네 형편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일이다. 매달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40만 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비가 여섯 가족의 유일한 고정수입이다. 간간이 조씨와 누나 정은씨가 아르바이트를 해 살림에 보태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건강이 나빠져 그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눈이 마주친 생쥐가 기자 옆에서 한참을 맴돌다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의 배설물이 눌러 붙은 위로 바퀴벌레가 아예 진을 치고 있다. 이런 데서 살다가는 온전한 사람도 정신이 나갈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감사와 기도를 드리는 가족을 위해 두 손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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