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저의 첫 임지는 강원도 인제의 전투부대였습니다. 험준한 산악지형, 훈련이 많기로 유명한 부대, 모두들 ‘그곳만은 아니길’ 생각하는 그 부대에 소대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6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부대에 처음 근무하는 여자 소대장으로 말입니다.
처음 ‘나의 소대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냉소적인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여 명의 소대원들과 동고동락하며 각종 전투임무 및 훈련을 이끌어야 하는 소대장이 자신들보다 작고 왜소한 동년배의 여자라는 사실이 그들은 불편하고 싫었던 것 같습니다.
소대장으로 임무를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나자 유격훈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주간의 유격훈련은 복귀시 완전군장을 메고 60㎞를 행군해야만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2주간의 체력훈련으로 지친 상태에서 15시간을 행군하고, 지형 또한 험준한 산악이라 더욱 고되며, 산속에서 부상자나 낙오자가 발생할 경우 차량 접근이 제한돼 소대원들이 부상자를 부축하고 군장도 나누어 들어야 했지요.
소대장으로서 첫 훈련, 유격복귀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완전군장을 어깨에 메고, 소대원 하나하나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군장 결속상태를 확인하고 소대의 선두부터 후미까지를 살피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갓 전입 와서 긴장하고 있는 이등병 옆에서 부모님 이야기, 입대 전 이야기 등을 하며 긴장을 풀어 주고, 휴식시간에는 소대원 한 명 한 명의 컨디션 특히 발의 상태를 살피며 돌아다녔습니다. 15시간 행군을 하면서 저는 식사시간을 제외한 10분간의 휴식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군장을 내려놓지 않고 우리 소대 진영의 앞뒤를 반복해서 살폈습니다.
사실, 생도시절 저는 매 훈련마다 ‘낙오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발을 딛기가 힘들고, 어깨를 내리누르는 군장의 무게를 이기는 것이 너무 힘들어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오면 길바닥에 쓰려져 잠이 들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화살기도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오직 나만을 위해 기도했고, 다른 사람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거나, 낙오한 동료의 군장을 들어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대장으로서 소대원 전원이 낙오자 없이 행군을 무사히 마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1소대 파이팅”을 외치는 저의 목소리는 고요한 여름밤 산속의 적막을 깨뜨렸고, 저의 선창으로 시작되는 군가 소리에 소대원들의 발걸음은 가벼워졌습니다.
첫 행군훈련으로 힘들어하는 이등병의 총을 들어주고, 헉헉거리는 병사를 부축하면서 산길을 올랐던 그 날 밤, 그동안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였던 화살기도는 “주님, 우리 소대원들을 도와주세요”로 변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