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는 2013년 11월 발표되어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재위 2013~)의 올 8월 방한을 앞두고 한국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읽혀지고 인용되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Gaudium Evangelii)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전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즉, ‘복음의 기쁨’에 담겨져 있는 신학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선교 사명’을 먼저 정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두 문헌 사이의 연속성을 깨닫고 이해하며, 다른 한편으로 과거에 비해 현재 무엇이 어떻게 더 발전되어왔는가를 살펴본다면, ‘복음의 기쁨’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와 그 외의 참여적 중재들
‘교회의 선교 사명’ 제1장(4~11항)에서는 모든 복음 선포의 중심에 위치한,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제시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명확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십니다. 따라서 아무도 성령의 감도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5항)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와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 하나가 제시된다. 그것은 바로 ‘참여적(참여된) 중재’(participated mediation) 개념이다.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중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 장애가 되기는커녕 하느님께서 몸소 정해 주신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 사실을 온전히 알고 계십니다. 다양한 종류와 정도로 참여하는 중재 형태들이 배제되지는 않지만, 그러한 중재 형태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중개에서만 의미와 가치를 얻으며, 결코 그리스도의 중개와 같거나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5항)
이 신학적 개념은 교회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구원을 향한 모든 열망과 기획과 노력이 결국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 안에 종속적으로 참여되고 수렴되어 그분을 통해서만 진정 성취되고 종국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임을 드러낸다. 사실, 우리가 여러 가지 직무와 방법으로(교회 지도자, 사목자, 신학자, 수도자, 교리교사, 선교사, 봉사자 등의 차원에서) 복음 메시지를 전하고 헌신하는 것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에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성모 마리아의 중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에 종속되는 임무임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교회 헌장」 62항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힌다. “실제로 어떠한 피조물도 강생하신 말씀, 곧 구세주와 결코 똑같이 헤아려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교역자나 신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듯이, 또 하느님의 유일한 선성이 피조물들 안에서 실제로 갖가지 모양으로 퍼져 나가듯이, 구세주의 유일한 중개도 피조물들 가운데서 그 유일한 원천에 참여하는 다양한 협력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불러일으킨다. 마리아의 이러한 종속적인 임무를 교회는 의심 없이 믿고 끊임없이 체험하며, 신자들의 마음에 권장하여 어머니의 이러한 도우심과 보호로 중개자, 곧 구원자를 더욱더 가까이 따르자고 한다.”
그런데 ‘교회의 선교 사명’ 5항에서는, 특히 그리스도인이 복음 선포 및 종교 간 대화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타 종교 전통의 구원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식별을 위한 규범으로서 이 ‘참여적(참여된) 중재’ 개념이 미리 제시된 것이라 분석 가능하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다운 교회를 모르는 선의의 타 종교인들의 구원 가능성을 개방적으로 인정하고 타 종교 전통의 구원론적 함축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 헌장」 22항에서 천명하듯이,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 지난 2월 해외선교사교육 파견미사에서 주교회의 해외선교·교포사목위원장 정신철 주교가 파견되는 선교사에게 성령의 은총을 청하며 안수하고 있는 모습.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은 교회는 그리스도로 부터 받은 선교사명을 성령의 인도로 수행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령
‘교회의 선교 사명’ 제3장(21~30항)은 ‘선교의 주역이신 성령’에 관해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생명의 활력을 얻으며 그 역동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 전체의 으뜸 주역이신 성령께서는 당연히 만민 선교를 인도하신다는 설명이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땅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장엄한 파견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기적을 행하는 사도들의 활약상이 잘 드러난다.
사실, 성령께서는 온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선교사로, 복음 선포자로 만드신다. 성령에 의한 내적 친교(2코린 13,13 참조)로 이루어지는 교회 공동체는 또한 세상을 향해 파견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성령론적 본질이다. 성령에 의한 교회적 친교는 곧 성령의 인도를 따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적 사명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친교와 일치를 주관하시는 성령께서는 세상 안에서도 신비로이 현존하시고 작용하시며 그리스도인의 복음 선포를 이끄신다. 복음 선포는 우선적으로 이 세상의 반복음적·비복음적인 가치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이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증거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 선포 중에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세상 안에 뿌려져 있는 그리스도 ‘말씀의 씨앗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 드러나는 ‘완성론’ 혹은 ‘성취론’적 선교관과도 같이, 세상 안에 묻혀 있는 이 ‘말씀의 씨앗들’을 정화하고 성장하게 함으로써 또한 복음화가 촉진되고 이루어진다.
‘교회의 선교 사명’ 28항은 이러한 복음화 작업을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이라는 신학적 원리를 통해 설명한다.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와 그 구성원들 안에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현존과 활동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령께서 종교적인 활동들을 포함한 인간의 활동들 안에, 그리고 진리와 선과 하느님께 이르려는 인간의 노력 안에서 발견되는 ‘말씀의 씨앗’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작용하고 계심을 상기시킵니다.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 민족, 문화, 종교에도 영향을 줍니다. 실제로 성령께서는 역사적 순례의 도상에 있는 인류를 이롭게 하는 모든 고귀한 생각과 활동의 원천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풍습과 문화 안에 있는 ‘말씀의 씨앗들’을 뿌려서 그 씨앗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성숙에 이르도록 준비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령의 보편적 활동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특별한 활동과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교회에 생명을 주시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선포하도록 재촉하시며, 모든 개인과 민족에게 선물을 주시어, 교회가 이 선물을 발견하고 대화를 통하여 받아들이고 증진하도록 이끌어주시는 분도 언제나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어떠한 형태의 성령의 현존도 존경과 감사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러한 현존을 식별하는 일은 교회의 책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시고자(요한 16,13 참조) 교회에 당신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는 박준양 신부는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 바로잡습니다
지난 6월 22일자(제2900호) 8면에 게재된 김혜경 박사의 ‘현대교회의 가르침(21) - 평신도 그리스도인(2)’ 제하 원고에서 ‘회칙’으로 소개된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 es Laici)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8년 발표한 ‘사도적 권고’이므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