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이 신나게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씨를 뿌립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리면서 즐거워합니다. 씨 뿌리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 마음과 우리 일상에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은총을 뿌리고 계시지 않을까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으면 항상 드는 생각이 왜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면 되지, 왜 쓸데없이 나쁜 땅에 씨를 뿌려서 씨를 낭비하는 것일까? 씨 뿌리는 사람은 생각이 있는 것인가?
근동지방의 농사법을 우리가 조금 이해하면 이 씨 뿌리는 방식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처럼 밭을 다 갈아놓고 씨를 뿌리면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와 그곳에서는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았다고 합니다. 당시의 방식대로라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씨를 뿌리면서 수확을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얼마나 많이 열매를 맺을까? 그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할까를 상상하면서 기분이 좋습니다. 돌밭이나 가시덤불에도 씨를 뿌리면서 열매 맺을 것을 기대합니다. 대개는 죽겠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돌밭에서는 뿌리내리기가 어려워 햇볕에 타 죽는다고 하십니다. 가시덤불에서는 싹이 나고 자라도 숨이 막혀 죽는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뻔히 죽을 것을 아시면서 하느님께서는 씨를 뿌리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으면 내 마음은 좋은 땅인지, 돌밭인지, 가시덤불인지를 생각하면서 좋은 땅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은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가깝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좋은 땅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들 마음을 좀 잘 가꿔서 좋게 만들라고 하실까요? 하느님께서는 좋은 땅이나 돌밭이나 어디서나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사방으로 씨를 뿌리십니다. 그 씨들이 죽을지 열매 맺을지를 걱정하는 것은 정작 우리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기쁘게 씨를 뿌리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가 바로 우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돌밭이나 가시덤불처럼 힘든 곳에 떨어져 어렵게 살기도 합니다. 누구는 좋은 곳에서 쉽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씨 뿌리신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서 열매를 맺으려 애쓰는지를 하느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들은 죽는다는 것을, 어쩌면 조금 자랄 수도 있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처지가 돌밭이나 가시덤불처럼 생명을 키워낼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르고 팍팍할지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은 날아듭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명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하느님께서는 무조건 씨를 뿌리십니다. 사랑을 던져주십니다. 생명을 키워내십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증거합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만 보자면 지금 살아서 숨 쉴 수 없습니다. 가시덤불 같은 답답함이 우리 안에 얼만큼입니까?
바늘 하나가 들어설 자리가 없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돌처럼 굳어져 있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숨을 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들도 살아갑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나약함과 욕심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의 씨가 사방에 흩어져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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