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국적을 취득한 유대인 조각가로서 파리 에콜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와 아카데미 줄리앙(Académie Juliana)에서 수학했다. 이미 파리에서 피카소(Picasso), 모딜리아니(Modigliani), 브랑쿠시(Brancusi) 등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현대 미술에 대해 고민했던 그는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아방가르드 작가에 합류함으로써 영국 현대 조각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거칠고 양감이 느껴지는 브론즈와 돌을 자주 사용했던 그는 당시 유럽 아카데미가 추구하던 고전적 양식을 버리고 태평양의 섬들과 서아프리카, 인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원시미술에 영감을 받았고 기계주의 미학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모더니스트 기질은 다수의 종교적 인물상들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런던 카벤디쉬 광장(Cavendish Square)의 <성모자>와 옥스퍼드 뉴 컬리지 채플(New College Chapel)의 <라자로>, 코번트리 대성당(Coventry Cathedral)의 <에케 호모>와 <대천사 미카엘>등은 이러한 예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이 지닌 의미는 크다. 유대인으로 ‘야곱(Jacob)’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엡스타인에게 ‘야곱과 천사’의 주제는 흥미 이상의 것이었다.
창세기(32장 23절-33절)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 주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이 먼저 그의 가족과 종들에게 야뽁 건널목을 건너게 한 뒤, 혼자 남아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사람(천사, 하느님)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했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결과 그로부터 축복을 받게 됐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고갱(Gauguin)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수의 작가들도 천사와 싸우는 야곱을 묘사한 그림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조각 작품에서 이 주제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야곱과 천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천사와 싸우는 야곱’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지만 엡스타인은 두 인물의 조각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상황을 연출한 형상을 재현했다.
▲ ‘야곱과 천사 Jacob and the Angel’, 1940~41, 알라바스터(alabaster),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
이제 원시적인 에너지로 응축된 육체의 대결은 종료되었고 영적인 고요함이 찾아왔다. 천사에게 전적으로 몸을 맡긴 야곱의 모습은 포기를 모르고 고집스럽게 덤벼들었던 그의 또 다른 면이었을까. 아니면 힘이 완전히 고갈되고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는 또 다른 야곱이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천사를 이긴 야곱을 꿈꾼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토록 이기고 싶었던 상대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은 야곱을 목도한다. 그토록 원하던 하느님의 축복은 나를 버리는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오는 것인가.
최정선씨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 중이며,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