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무거운 캐리어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도보 일정을 시작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해봅니다. 첫날의 어색함과 설렘 속에서 처음 만난 조원들과 각 본당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긴장감 속에서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들을 찾기 위한 8박9일을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지향을 담아 걷고자하는 열정을 보며 저 또한 열심히 걷고자하는 열의가 느껴졌습니다. 완주를 하고 싶어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아직은 첫날이라 어색한 조원들과 쭈뼛쭈뼛 파이팅을 외치며 가는 길, 함께 걷고 있지만 혼자인거 같고, 나 혼자 낙오자가 될 거 같은 무거운 마음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약한 몸과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부단히 애쓰는 제 모습이 참으로 미웠습니다.
첫날 도착지까지 무사히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착의 기쁨보다 조원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은 제 자신의 안도감이 더욱 컸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하루를 보내고 둘째 날이 됐지만 벌써 발에 잡힌 물집들과 건강하지 못한 저의 마음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현기증, 과호흡 때문에 조원들과 함께 걸을 수 없을 때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 ‘의지박약’ ‘낙오자’ ‘나약함’ 아픈 발보다 그 소리들이 저를 더욱 힘들게 하였습니다. 마음을 달랠 시간도 없이 계속 걷고 또 걸으며 포기하거나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때 함께 걷던 친구가 제게 자신의 깔창을 꺼내주며 더욱 힘을 내기를 바랐고, 한참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출발합시다라는 말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변화했습니다. 마치 중풍병자들의 친구들이 예수님에게로 데려다준 환자처럼 나는 이제 곧 다시 건강해질 것 같은 믿음이 생겼습니다.
기적같이 아픈 발을 이끌고 한 시간 반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고, 감사함과 할 수 있다는 여운, 가시지 않은 기운으로 힘차게 발을 내딛고 다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뜨거운 태양과 아스팔트는 목적지까지 걸어갈 수 없음을 더욱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고, 저는 완주가 아닌 수료로 이 도보순례의 여정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주저앉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했어 그걸로 된 거야. 오늘 쉬고 다시 내일 걷자’라는 말과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하느님께서 제게 주시는 위로였음을 알았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나 혼자 걷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나와 함께 그리고 주님께서 맺어주신 사람들과 함께’라는 든든함이 저를 다시 걷게 해주었습니다. 완주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것을 느끼며,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마음을 선물해주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하느님 사랑을 나누고 있음을 느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정해진 일정에 매여져 있는 거 같지만 마음의 자유와 평화, 우리 안에서 함께 걷고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시원한 냉수 한 모금을 통해 다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소리 안에서 정말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미사를 끝으로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모든 사랑을 기억하고, 길 위에서 느낀 나의 모든 감정들 또한 사랑하며,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도 주님과 함께 걷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주님, 힘들면 쉬었다 가고 다시 일어나 걷는 것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주님과 함께 이제야 나 당신을 알았습니다. 진종일 당신과 함께 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당신을 찾았더니 바로 내 곁에 계셨고, 아득히 먼 곳에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내 가까이에 계셨습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14기 여러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