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연속극의 대세를 이루는 ‘막장 드라마’들 주된 관심사는 초혼의 부모와 자녀로 이뤄지지 않은 가정들이다. 등장인물들이 원수인데 알고 보니 친엄마, 시누이인데 알고 보니 전처라는 식으로 얽혀 갈등하다 억지스럽게 화해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에 대한 관심을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재혼이나 입양을 악의 근원처럼 묘사하는 태도는 문제다.
막장 드라마에 따르면 재혼은 상대의 돈이나 권력을 노린 결과이고, 재혼한 여자에겐 말 못할 치명적 약점이 있다. 미혼모의 자식은 숨겨야 할 걸림돌이고, 계모들은 전처의 자식을 질투하며 학대하고, 입양한 자식은 꼭 사고를 친다. 편부모, 재혼, 비혼, 입양 가정에 대한 편견은 가족 드라마에 투영되고, 광고수익에 눈먼 제작자와 마음이 돌처럼 굳은 시청자는 극단적인 설정과 높은 시청률을 주고받으며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에 공모한다.
남의 가정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내가 처음 자각한 건 십수 년 전 교리교사 시절이었다. 매주 만나는 어린이들 사이에도 조손, 한부모, 재혼 가정은 엄연히 실재했다. 한번은 어느 아이가 보편지향기도 때 “결손가정을 위하여 기도드려요”라는 말을 듣고 결손가정이 뭐냐고 물어보더니, 그 뜻을 듣고는 덤덤하게 “아, 우리 집이구나” 한 적도 있었다. 그 아이들과 친구들은 ‘남다른’ 가정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것은 그들을 섣불리 편애하거나, 무슨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짐작하던 교사들의 반응이었다. 교사용 지도서의 미사 대본에 ‘결손가정’을 써놓은 이름 모를 필자도, 그 예문을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읽힌 우리도 무신경하긴 마찬가지였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교계매체의 신앙상담란에는 이혼, 재혼 가족을 죄인 취급하는 이웃 신자에게 상처받았다는 하소연이 종종 등장한다.
현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가정사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교회에 제시한 가장 중대한 과제다. 가정은 올해 2월 추기경 회의에서 다뤄졌고, “보편 교회의 선익에 직접 관련되는 사항에 대하여 신속한 결정이 요구될 때”(교회법 제346조)를 전제로 소집된 올해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에서도, 내년 10월의 제14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에서도 거듭 다뤄질 주제다.
사목이라 하면 사제와 수도자가 신자들에게 베푸는 행위로 여겨지지만, 가정에 대해서만큼은 평신도들이 같은 본당과 단체의 이웃들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가정사목의 출발이 아닐까. 다수의 가족극이 대중의 편견에 기댄 쉬운 방법으로 시청률을 탐하지만, 가족의 탄생과 재구성을 진지하게 숙고하는 명작도 드물지만 꾸준히 등장한다. 막장 코드에 반영된 편견을 반면교사로, 명작 드라마에 녹아 있는 통찰을 본보기로 삼아 이웃의 가정을 보는 눈을 맑게 닦을 때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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