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에는 이런 말이 있다. “북쪽문은 부서지고, 남쪽문은 남아있고, 서쪽문은 서있고, 동쪽문은 도망갔다.”
이 말처럼 수원화성의 북쪽문인 장안문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크게 부서져 복원했고, 남쪽문인 팔달문은 옛 모습대로 남아있으며, 서쪽문인 화서문도 옛 모습 그대로 서있다.
그런데 동쪽문인 창룡문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들이 문 안쪽에 숨겨둔 화포와 폭약을 유엔군이 비행기로 폭격을 하는 바람에 아예 흔적도 없이 도망가 버렸다. 하지만 현재 창룡문은 버젓이 세워져 있다.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다시 원형대로 잘 복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화성성역의궤’ 때문이다.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의 종합건축 보고서로서 화성이 완공된 후 화성축조에 참여했던 이들이 화성 축성 공사의 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 편찬한 책자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큰 행사가 있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해서 책자로 간행했는데 이를 의궤(儀軌)라 한다. 왕실 결혼식이나 회갑연, 장례절차, 왕릉건립, 궁궐의 신축이나 수리가 있을 때도 의궤가 작성됐다. ‘화성성역의궤’는 방대하고 자세하며 치밀한 내용이 수록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의궤로서 2007년 7월 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화성성역의궤’는 정조가 의문사한 이듬해 1801년(순조1년)에 금속활자로 간행됐는데, 권수 1권과 본편 6권, 부편 3권 도합 10권 8책으로 돼있다.
권수에는 공사일정, 공사감독관의 인적사항, 그림을 곁들인 각 건물에 대한 설명과 자재운반용 기구와 설명글이 들어 있다.
나머지 9권은 공문서와 왕명, 상량식 등의 의식, 장인이름과 각 건물별 자재수량, 전체 공사비용의 수입과 지출 내역, 심지어 각 건물에 들어간 못의 규격과 수량 및 단가, 한 건물을 짓는데 참여한 장인의 수와 작업기일과 직종별 각 장인의 이름 등을 꼼꼼히 밝히고 있다.
숭례문이 불타기 수개월 전, 수원화성 팔달산의 서장대가 한 청년의 방화로 전소됐다. 이 역시 ‘화성성역의궤’에 의해 복원될 수 있었는데 그 이후 민간 화성지킴이가 조직됐다.
우리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사료들도 잘 기록하고 귀중히 여기며 보존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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