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잘 죽어야’ 할까요, 마지막 순간까지 ‘잘 살아야’ 할까요? 이른바 ‘연명의료 법제화’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지영현 신부는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 문제의 근간은 “삶을 존중하는데 먼저 관심을 두지 않고, 죽음이 삶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법제화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보다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논의는 1997년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 때부터 시작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연명의료 결정법’(안)은 자칫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는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 ‘연명의료’는 물론 그 대상인 ‘임종기 환자’의 임종기에 대한 용어 정의조차 모호한 문제점도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환자의 뜻을 추정하기 위해 일기, 육성녹음, 유언 등의 객관적 자료를 첨부하는 방안만 추가해 이달 중 법안을 만들어 다음달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생명과 관련한 법안을 성급하게 추진 중인 우리 사회 모습에 관해 지 신부는 “그 이면에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은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라는 의식, 그래서 짐이 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릇된 주장이 깔려있다”고 일침을 가한다. 다른 생명윤리 전문가들도 이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는 합리성·효율성 등에 매여 생명을 보호하는 노력보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의료인의 책임을 면제시켜주는데 더욱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라고 지적해왔다.
특히 지 신부는 생명과 관련한 문제들에 관해 질문도 하지 않고, 심지어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들이 다수라는 점이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토로한다. 일반인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연명의료 결정 법제화 문제점을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말이다. 지 신부는 “교회는 바로 이러한 ‘무관심’을 꾸준히 지적해왔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지 신부는 먼저 질문을 던진다.
“살아가고 죽어가는 과정이 ‘돈’과 직결된 문제가 되어 버린 현실을 인지하고 있나요?”, “환자가 결정만 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해도 될까요?”, “우리에게 삶도 죽음도 선택할 권리가 있나요?”
지 신부는 “생명은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해서 ‘선택’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하며 “다 함께 논의하고 합의해서 법을 만들면 된다는 식의 생각, 건강하지 못하고 작고 약한 생명은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손댈 수 있다는 비뚤어진 의식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연명의료 결정과 관련해서는 “법제화 이전에 모든 국민이 호스피스 혜택을 보편적으로 받을 수 있는 정책과 사회 인프라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생명위원회 산하 ‘가톨릭생명윤리자문단’은 전문팀(Task Force Team)을 두고, 정부에 제시할 호스피스 관련 정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생명수호는 관심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해도 되는 활동이 아닙니다. 언제든 누구든 당연히 생명을 돌보고 또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우선 그릇된 법 제정부터 막아야 합니다. 올바른 법은 올바른 문화를 이끄는데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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