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피정 프로그램 전체를 하나하나 점검해가면서 쌓여있던 불만이 나도 모르게 말에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잠자코 듣고 계시던 신부님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피정을 준비하는 사람도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피정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여러 번 머릿속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투덜거림을 잠재우기란 쉽지 않았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믿음은 여전히 그대로 아니 전보다 오히려 더 퇴보했음을 느끼게 됐다.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그저 머리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옳다고 하니까 그대로 할 뿐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천국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면서도 나 자신은 그 길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보다는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그래도 주변 사람들보다는 봉사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해외 여행가는 친구들이나 애인이랑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지인들을 보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괜스레 우울함에 빠져 있곤 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지난 1년 간 이런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몇 년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니 검디검은 늪에 점점 빠져들어 가던 나의 신앙 여정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신심서적33권읽기’를 시작했다.
매번 정해진 달을 넘겨 읽기 일쑤였지만, 선정도서 중에 정말로 소유하고 싶었던 책들이 있다 보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쌓여가는 밀린 도서들이 좀 부담스럽긴 했다.
신심서적 읽기 운동은 올해와 내년까지 쭉 이어진다고 한다. 1/3정도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참 머뭇거리면서도 용케 포기하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다.
슬프게도 앞으로도 그렇게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일 거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성경구절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공동번역, 코린1 15, 58) 이 구절을 믿고 계속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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