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묵직하게 재밌다. 무대 위에서 벨칸토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책상에 앉아 철학 이야기에 사회 비평을 섞어 강연 한다. 생각거리가 많아질 때쯤 느닷없이 다시 노래를 한다. 춤까지 춘다. 이건 오페라도, 연극도, 강연도 아니다. ‘카바레트’(Kabarett)다.
국내에는 생소한 카바레트 장르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한국인 1호 카바레티스트’ 김주권(디오니시오·44·대구 삼덕젊은이본당)씨. 지난해 세례를 받으면서부터는 교회 공동체에 기여할 카바레트 활동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카바레트는 ‘까발림의 미학’을 지닌 융복합 종합예술입니다. ‘재미’를 전하면서 인생의 단맛, 쓴맛, 신맛 등 다양한 맛을 느끼고 ‘생각’하도록 만들죠. 우리나라의 사회 풍자극 ‘탈춤’의 해학적 요소를 떠올려보면 이해는 쉽습니다.”
카바레트는 1901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소규모 정치풍자 무대예술’로서, 유럽에서는 ‘대중적 관념예술’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 어느 한 부분에 고착되지 않은 새로운 예술형태로, 해학적 요소를 추구하면서 철학적·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 폴란드와 독일에 성악 공부하러 갔다가 카바레트의 매력에 빠져 돌연 카바레티스트로 방향전환한 김주권씨. 독일서는 300여 차례 공연을 펼쳤다. 이를 국내에 알리고 싶어 2008년 한국서 첫 카바레트 무대에 도전한 김씨는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독일 카바레트를 무작정 한국식으로 바꾸려다보니 실패한 듯하다”고 김씨는 고백했다.
“오페라를 한국에서 공연할 수는 있겠지만, 오페라가 한국 음악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카바레트는 독일 예술입니다. 근본을 바꾸려 한 데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었고 5년 동안 그 고민만 했습니다.”
한 번의 실패로 포기할 수 없었던 김씨는 2009년 완전히 귀국, ‘한국 카바레트 연구소’를 설립하고 대구를 중심으로 서서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근본을 찾겠다는 노력은 신앙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3대째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동안 무신론자로 살았던 김씨는 지난해 세례를 받고 가톨릭신자가 됐다. 대구 삼덕젊은이본당에서 활동하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김씨는 “한 사람의 가톨릭 신앙인이자 카바레티스트로서 교회에 기여할 일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카바레티스트는 세상이라는 공동체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인 만큼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요. 가령 예수님을 ‘그저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질문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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