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는 보통 낮에 한다. 하지만 수원성지는 매월 첫 금요일 저녁 7시30분에 성지 야생화마당의 성모자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달빛순례를 떠나 밤 10시경에 돌아온다. 3개월씩 1·2·3코스로 나누어 순례를 하는데, 낮 순례해설은 성지봉사자들이 담당하고, 달빛순례만큼은 처음부터 8년 가까이 내가 직접 맡아 오고 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그 옛날에는 사람들이 일월성신을 숭배해 해, 달, 별들을 향해 자신들의 소원을 빌었다. 다산은 방화수류정 아래쪽에 용연을 조성하고 가운데에 인공섬도 만들었다. 그리고 정조가 좋아하던 버드나무를 연못가에 빙 둘러 심었다. 수원팔경의 하나인 용연은 용이 사는 연못이라는 뜻인데, 용은 본래 왕을 상징했다. 그래서 용연은 ‘왕의 연못’이라는 뜻이다. 다산은 수원화성을 설계할 때 정조임금을 생각하며 연못을 조성했던 것이다.
가뭄이 들면 수원유수부사가 백성들과 함께 찾아가 기우제를 드린 곳이 바로 용연이었다. 그래서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용연에 달빛이 스며드는 아름다움 모습을 표현한 바, 용연에 비추는 달을 기다리다가 달이 연못에 뜰 때 달님을 향해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내려져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식 없는 이, 과거시험을 앞둔 이, 시집 장가 못간 이, 병자가 있는 집, 그밖에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밤중에 용연을 찾아와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정조 사(死) 후 전국적인 천주교박해가 시작돼 수원 유수부 관할지에서 붙들려온 천주교인들이 수원화성에서 처형됐는데, 천주교인들의 집안 가족들은 순교자들의 기일 등에 남의 눈에 안 띄게 밤에 용연을 찾아가 호수에 잠긴 달빛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하루빨리 조선에 종교의 자유가 주어져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오도록, 그리고 주님을 증거한 순교자들이 천국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을 것이다.
달빛순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이제는 순례객들이 남해 쪽이나 의정부 등지에서도 전해 듣고 찾아온다. 달빛 아래 순교 현장을 찾아나서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너무나 힘차고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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