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지 본당인 북수동성당은 박해시대 당시 토포청이 있던 자리였다. 포도청은 한양 한성부에만 둔 치안담당 관청이었고, 지방의 치안담당 관청은 토포청이라고 불렀다. 토포청(討捕廳)을 사전에서 찾으면 죄인을 잡아가두는 곳이라고 풀이돼 있다. 수원유수부의 치안을 담당하던 화성 안의 토포청은 화성행궁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종각이 세워져 있는 십자로(종로사거리)의 종로교회와 후생병원에서부터 북쪽으로 북수동성당과 수녀원, 최근 수원성지에서 법원경매로 매입한 4층 순례의 집 건물 터에 이르는 약 천여 평의 넓은 면적이었다.
정조대왕이 의문사한 이후 4대박해를 거치면서 한강이남에서부터 경기도와 충청도에 이르는 수원유수부 관할지역에서 체포된 천주교인들이 수원화성 안으로 압송되면 우선 토포청에 수감됐다.
그 가운데 양반 천주교인은 수원유수부사가 집무를 보던 화성행궁에서, 일반 천민 천주교인들은 판관이 집무를 보던 이아(화청관)에서 따로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심문 후에는 형옥에 수감되거나 토포청에서 처형됐다.
그 당시 토포청 내에 미루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만해도 종로교회 마당에 미루나무 고목 세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후 주차문제로 베어버렸다는 말이 전해지며, 지금은 소음과 공해에 약한 미루나무를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미루나무는 키가 무척 높게 자라는 나무인데, 미루나무 꼭대기에 천주교인들을 목을 밧줄로 매달아 교수형에 처해,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토포청 곁을 지나던 사람들은 미루나무에 매달린 천주교인들의 시신을 보며 너무도 끔찍해 치를 떨었다고 하며 따라서 수원화성에는 오늘날까지도 “무당짓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천주학쟁이만은 되지 말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즉, ‘천주교를 믿느니 차라리 무당이 되는 편이 낫다’라는 말이었다. 수원화성 안에는 박해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무당들이 살고 있다.
8년 전 수원성지에 심은 미루나무 묘목이 죽지 않고, 성지 야생화들과 함께 무럭무럭 잘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박해시대에 무당보다도 못한 멸시를 받으면서도 용감히 주님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굳은 믿음을 기리며 묵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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