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 쌀 수입 전면 개방을 발표하면서 농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농민 보호 대책으로 ‘쌀 관세화 400%’ 정책을 함께 고시했지만 식량 주권 등을 담보하기에는 미봉책에 그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쌀 관세화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 2004년 쌀 협상 결과에 따라 2015년 1월 1일부터 쌀을 관세화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관세화는 상품 수입을 제한하는 허가제나 수량제한과 같은 보호수단을 없애고 관세를 통해서만 수입을 규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관세만 내면 누구나 외국 상품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전면개방을 의미한다. 농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쌀 개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고 ‘쌀 관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쌀 수입을 통제하던 수단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1994년 타결된 UR 협상에서 모든 농산물을 관세화하기로 했으나, 우리나라는 쌀을 예외로 인정받아 10년간(1995~ 2004년) 관세화를 유예해왔으며, 2004년 쌀 협상을 통해 관세화 유예를 다시 10년(2005~2014년) 연장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유예 기간 동안 의무수입물량(MMA)은 5만1307톤(1995년)에서 22만5575톤(2005년), 40만8700톤(2014년)으로 계속 늘었다. 40만8700톤은 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 423만 톤의 9.7%에 해당한다. 쌀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MMA 물량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는 쌀 관세화가 쌀 수입을 줄일 수 있다며 농민들을 달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통상용어 때문에 정작 이해당사자인 농민들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가톨릭농민회 손영준(프란치스코·46) 사무총장은 “쌀 관세화는 쌀 전면 개방의 시작점이다. 처음에는 높은 관세로 수입쌀 진입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관세 감축과 철폐 압력을 벗어날 수 없다”면서 “이해당사자인 농민이나 국민과도 협의하지 않고 농산물 시장을 내주려고 하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등이 속한 ‘식량 주권과 먹거리 안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정부의 기습적 쌀 관세화 선언은 민족농업 참사”라며 “정부의 기습적 관세화 선언은 국민과 불통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쌀 관세화 선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쌀 대책팀장을 맡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WTO의 제2기 규범협상(DDA, 도하개발어젠다)에서 한국이 농업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면서 “한국이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 지위로 쌀 시장을 개방하게 되면,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한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정현찬(미카엘·66) 회장은 “관세화 문제에 가로막혀 식량 주권 문제나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일방적인 쌀 관세화 발표를 철회하고 농민, 정부, 국회가 3자 협의기구를 구성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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