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바람은 마귀 들린 딸이 낫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만나줄지 어떨지도 모르는 유다인 남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멀찍이서 불러봅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제 딸을 낫게 해 주세요.” 가까이 다가가서 엎드려 절을 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여인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엄마로서 자기 딸을 낫게 하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들이 자녀들을 키우고 지켜오신 바로 그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좀 의외입니다. 다급한 마음, 애끓는 마음, 간절한 마음을 보이는 여인에 대해 예수님의 반응은 데면데면하십니다.
너그럽고 인자하고 자상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당신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십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라, 나는 모르겠다’ 라는 표정이십니다. 피곤하신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아니면, 여인의 마음을 확인하시려는 것이었을까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냉랭한 반응에도 여인은 줄기차게 매달립니다. 결국 여인은 하느님의 구원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들도 포함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돌아서십니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세상사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삽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내 맘대로 세상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란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은 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인의 믿음이 큰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상으로 내려주신 것입니까? 나는 믿음이 약해서 예수님께 그런 상을 받을 수 없습니까? 내 믿음이 언제 가나안 여인처럼 커질까요? 우리가 내 믿음은 약해서 안 된다고 마음먹으면 매일 안 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여인의 믿음이 커진 것은 간절함 때문입니다. 딸 아이를 낫게 하고 싶은 엄마의 간절함! 그리고 고단함. 마귀 들린 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낫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가나안 여인이기 때문에 배척받을 것이 뻔한데도 딸을 위해 모욕과 업신여김을 무릅쓰고 유다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이 여인의 믿음은 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간절함은 더 커지고, 믿음도 따라서 커집니다. 딸을 구해야 하니까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그것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습니까? 부족하다고만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나름 고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간절함에 눈물을 흘린 적도 많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여기까지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내가 구하는 그것. 그것이 내 개인의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구하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폭을 넓히세요. 가족에서 이웃, 본당, 사회, 세상, 우주. 하느님께 닿아보세요. 우리의 간절함과 고단함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이 세상을 우리 마음대로 되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하느님이기를 기도합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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