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24위 시복은 복자들의 신앙 후손인 한국교회 신자들의 손으로 현양하고 준비하며 일궈낸 시복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103위 성인은 선교사들의 기록과 노력으로 시복이 이뤄졌지만, 124위는 사제·수도자·성직자 등 한국교회의 구성원이 힘을 모아 순교자들의 기록을 찾고 널리 알리며 기도·성지순례 등으로 현양한 결과 성취될 수 있었다. 교구 역시 시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교구가 시복을 위해 해온 활동을 정리해 본다.
초기 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84년 103위 시성식을 준비하면서 부터다. 103명이라는 많은 수의 순교자가 시성됐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순교자들이 시복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다. 시복 추진에 대한 관심은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에서 시작됐다.
전국적으로는 103위 시성식 이후로 초기 박해 순교자들에 관한 관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교구는 이미 우리 신앙의 뿌리를 찾는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 이전부터 천진암성지를 중심으로 초기 한국교회와 순교자들에 관해 연구해오던 교구는 1986년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초기 교회를 연구하고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한국교회 초기 평신도 지도자 5위를 현양해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95년 12월 김병열 신부(현 교구 원로사목자)가 교구 관련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김 신부는 어농성지를 개발하고 시복대상자들에 대한 연구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1996년 교구는 당시 교구장 고(故) 김남수 주교의 승인으로 주문모 야고보 신부, 윤유일 바오로, 윤유오 야고보, 윤점혜 아가타, 윤운혜 루치아, 정광수 바르나바, 지황 사바, 최인길 마티아 등 8위의 시복시성 추진을 결정하고 시복시성추진위원회를 결성, 성지별 자료조사와 각 순교자에 관해 연구했다.
1997년부터는 주교회의에서 124위를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시복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시복 사업이 전국 단위로 통합됐지만, 교구는 교구 내 복자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활동했다.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전국 단위의 노력에 함께했고, 수원교회사연구소도 많은 연구를 통해 시복 사업에 힘을 더했다.
2002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4차례에 걸쳐 한국교회 창설주역 시복시성을 위한 심포지엄을 실시하고 심포지엄의 자료를 수합해 「한국 천주교회 창설주역의 천주신앙」을 발간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는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시복을 향한 염원이 뜨거워졌다. 교구 총회장단은 2011년 7월 3일 ‘시복시성을 위한 우리의 결의’를 발표하고 모든 본당과 함께 시복시성기도문과 묵주기도를 바치고 도보성지순례, 문화활동 등을 통해 순교자들의 삶을 체험하고 알리고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또 순교자를 기억하고 따르기 위한 방법으로 도보성지순례를 비롯해 성지순례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2011년 8월 임원진을 중심으로 시복시성에 지향을 두고 도보성지순례를 실시했다. 교구 청소년국도 교구 내 15개 성지를 잇는 성지순례길 ‘디딤길’를 마련하고 자료집을 발간해 누구나 도보성지순례를 통해 순교자의 삶을 체험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2012년 3월 「수원교구 관련 하느님의 종 31위 발자취를 따라서」를 발간해 124위 중 교구 내 8개 성지에서 현양하고 있는 교구와 관련된 31위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 교구민들이 성지순례를 하며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31위의 복자를 현양하는 직접적인 활동은 교구 내 성지들을 중심으로 이어져왔다. 각 성지는 해마다 순교자성월, 순교자현양대회를 통해 31위를 비롯한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했다.
천진암성지는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유해를 성지에 이장하고 묘역을 조성해 현양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정약종이 쓴 한글교리서 「주교요지」를 8개 국어로 번역해 웹사이트로 공유하고 있다.
양근성지는 성지에 복자 조숙(베드로)·권천례(데레사)·윤점혜(아가타)의 동상을 세우고, 순교지 인근 양근섬에 복자들과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조형물 ‘영원으로 가는 사다리’를 설치했다. 그리고 도보·수상성지순례 코스를 개발해 순례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31위 중 가장 많은 17위를 현양하고 있는 어농성지는 복자 윤유일(바오로), 지황(사바), 최인길(마티아), 주문모(야고보) 신부, 윤유오(야고보), 윤점혜(아가타), 윤운혜(루치아) 정광수(바르나바), 강완숙(골룸바)를 현양하기 위한 가묘를 조성했다. 또 이들이 청년이라는 점에서 청소년·청년을 위한 성지로 삼아 의미를 더하고 있다.
또한 남한산성순교성지는 복자 한덕운(토마스)을, 수리산성지는 복자 이성례(마리아)를, 요당리성지는 복자 장(토마스)를, 죽산성지는 복자 박경진(프란치스코)·오(마르가리타)를 각각 현양하고 있다.
성지로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복자의 삶의 터전이자 순교지이기도 했던 여주 지역은 여주본당이 복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여주의 순교터에는 순교치명기념비가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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