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가 시복됐다.
124위의 시복이 의미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많은 순교복자가 있기에 자랑할 수 있어서도, 교황이 직접 시복식을 주례해서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공경하며 우리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삼아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데 참 의미가 있다.
복자(福者)는 하느님을 직접 보는 지극한 행복의 상태인 지복직관(至福直觀)에 이른 이들, 바로 하느님 나라에 있는 이들이다. 시복은 그들의 덕행이나 순교 등을 보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작업일 뿐, 이미 하느님 나라에 든 이들의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회의 확인으로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고, 유해를 공적으로 경배할 수 있으며, 공식 기도문을 통해 기도의 중재를 청할 수 있게 된다. 성인과 차이가 있다면 성인은 전 세계가 함께 공경하는 반면 복자는 특정 지역이나 수도단체에서 공경할 수 있다는 차이일 뿐 어느쪽이 더 영광스러운 상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모든 변화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있는 복자들을 위함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선조 복자들이 살아가던 터전에는 교구의 많은 지역도 포함돼 있다. 우리가 지금 딛고 살아가던 이 땅에 복자들도 살아갔다. 교구에서 순교한 복자가 124위 중 11위이고 교구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하던 이를 포함하면 그 수는 31명에 이른다. 이들을 기억하고 현양하는 성지도 천진암·남한산성·수리산·요당리·죽산·양근·어농·여주성지 등 8곳이다.
교구는 시복시성추진위원회와 교구를 중심으로 전 교구민이 힘을 모아 이번 시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복자를 향한 관심은 사실상 지금부터 시작이다. 복자의 삶을 배우고 묵상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 성찰하며 기도의 중재를 청하며, 복자들처럼 거룩한 삶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를 위한 시복 추진 노력이었다.
124위 복자는 우리 신앙의 뿌리다. 박해 속에서도 복음적 가르침을 따르고 전하며 초기 한국교회를 구성한 이들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믿음의 씨앗을 뿌리내린 복자의 모범은 세속의 가치와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잊기 쉬운 지금 우리들이 믿음을 굳건하게 해준다.
또한 124위 복자와 103위 성인은 모두 순교자다. 순교의 영광은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이 죽음을 뛰어넘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의 첫머리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난다”고 전한다. 200년 전 이 땅을 살아가던 신앙의 선조들은 현재 교황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에 응답했다. 이제 복자를 맞이하는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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