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 부임하고 먼저 천주교인들이 교수형을 당한 미루나무 묘목을 구해 심었고 미루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을 맞춰주기 위해 6백여 평의 성지마당 둘레에 단풍나무, 느티나무, 벚꽃나무 등을 구해 심었다. 그리고 봉화대 모양의 로사리오의 길을 만들면서 로사리오 화단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나무와 화초를 많이 심으면 공기가 맑아지고 순교나무인 미루나무가 잘 자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성지 본당의 교우 중에 야생화 박사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자신의 블로그에 야생화 수천 장의 자료를 수집한 분이었고 야생화를 끔찍이도 사랑하며 가꾸는 분이었다. 매년 새로 심는 일년초와는 달리 야생화는 해마다 다시 심지 않아도 되고 사철 꽃을 볼 수 있다는 그분의 말을 듣고 성지화단에 야생화를 심기로 작정했다.
야생화는 말그대로 야생에서 사는 꽃이기에 자연그대로 내버려두면 스스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정말 야생화는 주변의 잡초를 뽑아주거나 물을 주게 되면 게을러져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내 죽어버리고 만다. 척박한 환경에서 주위에 온갖 잡초들이 함께 자라야 야생화는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고 튼튼하게 성장하며 꽃도 아름답게 생기를 내며 피운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화원의 꽃들은 화려하고 향기도 그윽하며 꽃송이도 크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데 비해, 야생화는 꽃도 자그맣고 눈에 잘 안 띈다. 그런데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겸손하고 청초한 모습이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꼭 닮았다. 성모님은 겉으로 드러냄 없이 순명, 정결, 청빈의 덕행으로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걸으셨고, 주님의 비천한 여종으로서 예수님의 뒤에서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이들, 굶주린 이들, 영적으로 병든 이들을 전구하시고 주님께 인도해 주시는 구원의 어머니이시다.
성지에 야생화를 키우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있어서 좋은 것을 얻으려고 나쁜 것을 없애려 한다면 좋은 것까지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즉 행복을 얻으려고 고통을 멀리하면 내가 얻으려했던 행복도 함께 잃어버린다는 진리이다. 일생을 통해 아드님의 십자가 길에 동참하시며 온갖 고난을 다 끌어 안으셨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꽃을 피우신 성모님의 삶을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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