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생활을 하는 동안 아무리 어렵고 한계가 있어도 하느님 자비를 믿고 그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1970~1990년대 한국교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어준 사제 오영진 주교(Oliver de Berranger·77)가 한국을 찾았다. 8월 14~18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일정을 맞춘 것도 있지만 지난 7월 4일은 오 주교가 사제품을 받은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유학 중인 사제들을 만나러 최근 프랑스를 방문한 정신철 주교(인천교구 보좌주교)가 이러한 사정을 알고 그를 한국으로 초대한 것이다.
오 주교의 금경축 기념 미사는 8월 24일 서울 시흥동성당에서 봉헌됐다. 한국을 떠난 것이 벌써 20여 년 전 일이지만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자리를 채웠다. 미사 후에 이어진 축하식과 식사 시간에는 축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 주교는 여전히 유창한 한국어로 그들의 환대에 답했다.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옛날이야기들이 한국교회 신자들을 만나니 다시금 제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저를 사랑해 주신 분들의 사랑이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있어요.”
한국에서 오 주교가 머문 기간은 18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동안 그는 한국교회에 많은 씨앗을 심었다. 노동사목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프라도회를 소개하기도 했다.
5년 전 프랑스 생드니교구장에서 물러난 이후 사목 현장에서 은퇴한 오 주교는 지금도 항상 한국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까지 배송되는 가톨릭신문과 인터넷이 전령사 역할을 한다.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한국교회 소식을 접하고 있어요. 뉴스들을 보면 정말 많이 변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놀랍고 희망적인 곳이에요.”
오 주교는 현재 고향인 마르세유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프라도회의 정신을 따라 매일 복음을 연구하고 어르신들과 나눈다.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살아온 그는 지금의 삶에 보람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주님 품으로 가는 길목에서 어르신들과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합니다. 제 건강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 품안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올 뿐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을 뵙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그는 지난 8월 말 프랑스로 돌아갔다.
오영진 주교는 1975년 김수환 추기경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도림동본당 보좌, 구로1동·종로본당 주임, 가톨릭노동장년회 지도신부를 역임했다. 1993년 고국으로 돌아간 후 1996년 주교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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