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지에 처음 찾는 이들은 “성지에 웬 잡초가 이리 많냐”고 한다. 성지마당 화단에 야생화를 힘들게 구해다 심었지만, 잡초는 심지도 않았는데 마구 자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잡초가 잡초로 태어나고 싶어서 잡초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조상이 잡초라 잡초인 것을 잡초를 탓할 수는 없었다. 지혜서 11장 24절에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수원순교자들은 대부분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평민 이하 천민들이어서 박해시대 당시 무당보다 못하고 잡초보다도 못한 천대를 받던 분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의 꽃을 피운 분들이다.
야생화가 성모님을 꼭 닮았다면,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스며든 땅에서 그 피를 먹고 자란 잡초는 수원순교자를 꼭 닮은 것처럼 보인다. ‘야생화 곁에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순교자들이 피를 흘린 땅에서 그 피를 먹고 자란 잡초야말로 거룩한 잡초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례 강론 때, ‘우리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잡초에게도 잡권이 있다’고 했다가, “잡초에게 잡권이 있다니, 혹시 성지개발하다가 머리가 돈 것 아니냐?”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새 야생화와 함께 잡초를 귀하게 키운 지 9년째 됐다. 그 결과인지 어린 묘목 미루나무가 잘 자라는 것은 물론이요 어느 날부터인가 화단에 청솔모가 뛰어다니고, 족제비와 너구리가 찾아온다.
이제껏 성지에 한 번도 농약을 친 적이 없다. 전문가에 의하면 야생동물은 사람들이 잠잘 때 좋은 먹거리를 찾아 직경 20킬로미터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수원성지가 도심 속에 있지만 야생동물들이 수원성지에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너희가 만일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너희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무엇이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하셨는데 흔한 잡초지만 하느님의 작품으로 여기고 소중히 키우다보니 잡초와는 비교도 안 되는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우리 인간 중 그 누구도 밉지 않고 귀하게 여겨지는 나 자신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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