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 배경
이 회칙 반포의 배경은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무엇보다도 “생명이 약하고 자기 방어능력이 없는 곳에서, 유례없이 증가하고 심각해지는 개인과 민족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들, 빈곤, 기아, 풍토병, 폭력과 전쟁 같은 종래의 재앙에 덧붙여 새로운 위협들이 위험스러울 만큼 방대한 규모로 생겨나고 있는”(3항)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생명에 대한 새로운 위협들에 대한 교회의 염려이다. 실상 인간생명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이나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서부터 야기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위협들뿐만 아니라 특별히 더욱 강력해진 새로운 문화사조에서부터 나타나는 공격적 형태의 인간생명에 대한 위협적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회칙은 새로운 문화사조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생명을 거스르는 범죄들에 새롭고 - 가능하다면 - 더욱 사악한 성격까지도 부여하는 이러한 문화사조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즉 광범위한 여론의 분야들이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생명을 거스르는 일련의 범죄들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처벌의 면제뿐 아니라 심지어 국가의 공인까지도 요구합니다. 그럼으로써 이러한 행위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그리고 보건 제도의 무료 봉사까지 받아가면서 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4항)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교회는 절대로 무관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인간은 교회가 걸어가야 할 가장 첫 번째이며 기본적인 길”(「인간의 구원자」 14항 참조)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복음」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배경에 대해 말한다. 곧 개별 인간은 인간의 육체를 취하신 하느님의 말씀의 신비에 의해서 교회의 모성적 보호에 맡겨진 존재이기 때문에 “교회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을 그 가슴 깊이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위협은 구원을 위한 하느님 아들의 강생에 대한 교회 신앙의 핵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며, 교회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에 힘쓰도록 한다”(3항)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인간생명의 위협들에 대한 실제적 상황에서의 도전에 응답함으로써 개입한다는 것이다.
회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레오 13세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백주년 직후 주교들에게 보낸 개별서한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1세기 전에 노동자 계층이 기본권을 억압당하고 있을 때, 교회가 노동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신성한 권리를 선포함으로써 용기 있게 그들을 옹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또 다른 범주의 사람들이 생명의 기본권을 억압당하고 있을 때에 교회는 그와 똑같은 용기로써 소리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의무를 느끼고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위협당하고 멸시받으며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 사람들 편에서 복음을 외칩니다.”(5항) 생명의 복음이 온 세상에 울려퍼져야 할 이유인 셈이다.
▲ 회칙 「생명의 복음」은 생명에 대한 위협과 이 세상에 폭넓게 만연되어 있는 ‘죽음의 문화’(12항 참조)에 반해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 생명에 대한 숭고한 가치와 존엄성을 담고 있는 복음을 이 세상에서 선포하고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려는데 취지를 두고 있다. 사진은 마산교구 가정사목국 생명위원회가 지난 6월 8일 펼친 생명대행진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의미와 성격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하여」라는 부제로 발표된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은 그 제목을 ‘주교들에게, 사제들과 부제들에게, 남녀 수도자들과 신자들에게, 선의의 모든 이에게 보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이라고 하여 제목에서부터 회칙의 적극적인 성격과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인간생명에 대한 전례 없는 위협과 ‘죽음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이 회칙이 지니는 주된 목적은 모든 인간생명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복음, 유한한 시간 속에서 그 생명이 갖는 위대함과 고귀함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다. 사실 생명은 복음의 목적인 동시에 인간의 목적이자 교회에 맡겨진 목적이기 때문이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강력한 교도권으로 제시되고 있는, 일종의 교과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톨릭교회의 생명윤리를 체계적이고도 함축적으로 설명해주는 동시에, 현대 사회를 향한 교회의 긴박한 호소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의 복음」은 다른 모든 회칙과 마찬가지로 교황의 통상 교도권의 한 표현이긴 하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1991년 4월에 있었던 임시 추기경회의에서 처음으로 표명되었고 이어서 가톨릭교회의 모든 주교의 자문에서도 표명되었던 ‘주교단의 단체성 정신’(the spirit of episcopal collegiality)이라는 표현이며, 곧 가톨릭교회의 모든 주교가 만장일치로 확고하게 이 회칙의 가르침에 동의하면서 반포되었다는 점이다. 이 가르침은 실질적으로 ‘인간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대한 분명하고 단호한 재천명’이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개개인과 모든 인간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받들기를 촉구하는 절박한 호소이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개인 독서를 위한 책은 아니다. 때로는 특별한 묵상이 필요하고, 때로는 연구라든가 심화가 요구되는 문헌이다.
최우선 목표
「생명의 복음」은 인간생명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반포되었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볼 때 인간생명은 인간 삶의 모든 면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순간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육체적이고도 동시에 영적인 삶, 지상의 삶이든 영원한 삶이든 그 모두를 포함한다.
회칙은 특별히 인간 삶의 모든 영역과 모든 형태에서 드러나는 인간생명에 대한 위협들에 대해 고뇌한다. 인간생명은 결코 그 어떤 것으로도 나누어질 수 없는 유일회적인 그 어떤 것이며, 바로 여기에 회칙 「생명의 복음」이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 회칙은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인간생명의 극단적인 두 형태, 곧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생명의 양극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간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간과하지 않는다.
회칙의 핵심적 요소는 인간생명의 초기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 가해지는 위협적 환경에서 회칙의 최우선 목표를 밝힌다는 점이다. 회칙은 그러한 위협적 환경이 단순히 항상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것은 분명히 문화적, 사회적 및 정치적 차원에서의 매우 강력하고도 위협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책임에만 맡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은 명확하게 ‘죄의 구조’,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생명을 거스르는 음모’에 대해서 고발한다.(12항 참조)
회칙의 이러한 목표는 가톨릭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계승하는 것이다. 개인과 관련된 윤리 문제는 단순히 그 개인의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윤리라든가 정치윤리로까지 이동되는 수로의 결정적인 기초가 된다.
이동익 신부는 1983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수품 됐으며, 로마 라테란대학교 성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 공항동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교황청 생명학술원 회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