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에서 G20 정상회담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이때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한국기자에게 먼저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한국기자 그 누구도 손을 들지를 않았다. “없나요? 누구 없나요?”를 반복하며 당황스러워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표정이 담긴 동영상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을 더욱 더 부끄럽게 한 적이 있다.
수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가장 당황스러운 사실은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말해야 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 조금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학년이 올라가면 더 익숙해져야겠지만 오히려 더 힘들어한다. 흥미로운 것은 정답이 없는 자기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더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신입생 150명 중에 어느 누구하나 자신 있게 손드는 학생이 없다. 누군가 발표해주기를 바라면서 서로 눈치만 본다. 그래서 시간을 주고 써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볼펜만 움켜쥐고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 쩔쩔맨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20여 년을 살아오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니.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입시만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동안 이들에게 그 누구도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묻지 않았고 다만 ‘무엇을 학습했는지’만 다그치며 물어왔다. 생각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암기하라 했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쓰기보다 남의 지식을 시험지에 채우기에 급급했다. 수많은 교과서를 읽었지만 남의 생각만을 학습한 것이지 스스로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책을 선택하고 읽은 적이 별로 없다. 교과서가 자신의 인생 속에 들어오지 못했고 학교의 공부가 삶을 건드려주지 못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을 받아 적기에 바빠 내 스스로 “내 자신이 누구지?”라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외우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이렇게 정답 쫓기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질문도 정답이어야 하기에 ‘왜’라고 묻기를 두려워 한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정답’이라며 말하기를 권해도 생각 자체도 정답이어야 하는지 반응이 없다.
생각을 할 수 없는 청춘에게 고한다. 자신의 생각으로 생각하라고. 안 된다고? 그동안 안 해온 것을 어떻게 하냐고? 그렇다면 책읽기를 권한다.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묻자. 아마 대부분 진로나 취직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그 ‘무엇’에 관련된 책 10권만 읽어라. 분명 그 분야가 머릿속에서 훤히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10권의 책을 읽게 되면 그 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동시에 더 많은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그 질문 때문에 더 많은 책을 읽게 될 것이고, 더 천천히 깊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책은 나 자신을 마주하게 돕는다. 그리고 저자의 경험을 통해 ‘인생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묻게 해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답’이 아닌 ‘길’을 찾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자. 정답이 아닌 길을 찾는 사람만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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