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훈련은 대대전술훈련이었습니다. 강원도 양구의 11월 추위 속에서 1주일 동안 진행됐던 그 훈련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낯선 지형에서 지도상에 표시된 기동로를 따라 새벽녘에 신속하게 기동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대대장님이 우리 소대를 첨병소대로 지정해 저는 대대 선두에서 기동로를 개척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까지 부여받아 훈련 전부터 걱정이 많았습니다.
‘대대장님께서 나를 믿고 중요한 임무를 주셨는데, 실망시켜 드리면 어쩌나, 나로 인해 우리 대대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안 될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훈련 전날 훈련 장소를 혼자서 돌아보기도 했지요. 당시 저는 자동차가 없어 택시를 타고 그 근방까지 가서 산을 몇 시간씩 걸어보면서 중요한 지형지물을 눈에 익혀놓으려고 노력했지만, 왜 이렇게 산속 길들은 하나같이 똑같게만 보이는지 불안한 마음에 그날 밤 잠도 오질 않았습니다.
공격개시 시간은 04시. 저녁식사 후 병력은 A형 텐트를 치고 수면을 취하다가 02시에 기상해 공격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다음날 12시까지 계속되는 공격기동을 위해 약 6시간의 수면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침낭 속에서 어제 와 살펴봤던 기동로를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 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꽁꽁 얼어 잘 펴지지 않는 손으로 A형 텐트를 걷고 공격준비를 하면서도 기동로를 떠올려 보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공격명령이 하달되고 우리 소대는 대대 선두에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해가 진 뒤의 세상은 해가 지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습니다. 랜턴의 빛이 새어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지도를 비추고 나침반을 이용해 방향을 잡아가며 조심스럽게 기동로를 개척해 나갔습니다. 분명 영하의 날씨였지만 제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요. 속도 조절과 중대 간 간격유지를 위해 잠깐 동안 기동을 중지해야 할 때 저는 미리 앞으로 나가 이동로를 판단하고 안전상의 유의사항을 확인했습니다. 그날 밤, 해가 뜨기 전까지 산속을 기동하면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간절히 하느님을 찾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말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을 때, “하느님 도와주세요”하며, 한쪽 길을 택한 적도 두어 번 있었습니다. 다행히 당시의 판단은 크게 틀리지 않았고요. 하느님이 도우셨겠지요.
다음날, 09시 우리 대대는 공격목표를 탈취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손을 녹이며 공격목표지점에서 출발지점을 바라봤습니다. 너무도 단순한 기동로였고, 5시간 동안 온 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어제 밤, 제가 왜 저 속에서 그렇게 긴장하며 헤매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삶 안에서 보면, 무척 힘겹고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